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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10201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목계마을 사람들은 별신제의 경비 추렴과 특히 줄다리기 줄을 만들기 위해 수백 토매의 짚을 자체 공급해야 했고, 이러한 일은 제작 과정에서 협동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줄다리기에는 난장판이 곁들여지고 유흥과 놀이 문화가 주를 이루므로 주먹패도 있게 마련이었고 외지에서 드나드는 뱃사공들은 직업 특성상 행동이 거칠고 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계 사람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하나로 뭉쳐 자존심을 지켜 나갔던 것이다.

2007년에 재현된 목계별신제에는 연인원이 수천 명에 불과하였으나 과거에 목계 줄다리기를 하면 하루에 수천 관중이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이 질서가 잡힌 시대가 아니라 법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세상에서 행사를 원만하게 진행하려면 세심하고 계획성 있게 행사를 추진해야 했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기는 놀이 문화를 이룩한 목계인은 그 뭉치는 힘이 대단했다고 본다.

내창장 백중날이나 엄정초등학교 운동회 때 목계 사람들이 잠방고개를 넘어 새보들에 나타나면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찬바람을 몰고 왔다고 한다. 또 농악을 치거나 브라스밴드를 불면서 잠방고개를 넘어가야 엄정이 조용했다고 한다. 나쁜 의미보다 목계 사람들에 대한 시샘과 부러움이 어우러져 비아냥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목계마을은 우리나라 법정 리·동 중에서 특이한 곳이다. 면소재지가 아닌 곳에 면소재지에 있는 행정 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통명학교(1909년), 충주 헌병분대 목계파견소(1910), 충주경찰서 목계주재소(1919년), 농업은행 목계출장소(1916년), 목계 우편소(1916년), 연초수납장(1940년) 등이 세워져 엄정면에는 2개의 행정 기관이 있는 특이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문화와 신문물의 혜택을 일찍 받아 목계에서는 많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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