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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우리 손으로 세웠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10204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목계 서북쪽 입구 노변공원과 목계줄다리기 별신제유래비가 서 있는 곳에는 목계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공덕비에 학교 설립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서로 엇갈린 주장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윤해영 씨의 아드님이신 윤우식 씨를 윤태호 씨와 함께 찾아보기로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서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강경한 어조로 “그런 일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이야기해봐야 자기 이야기는 반영되지도 않고 현재 마을에서 주도적인 사람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인터뷰하기를 꺼려하였다. 윤태호 씨와 함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야 한다고 여러 번 권하자 마지못해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계의 학교 설립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는 방앗간을 운영하여 많은 돈을 벌자 학교를 세워 우리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쳐보자는 뜻을 세웠어. 그 시절에는 장마가 질 때면 목계강 변에는 수박, 돼지, 집지을 때 쓸 만한 통나무들이 떠내려 왔었어. 그럴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강변으로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물건을 건져 올렸어. 많이 건져 올린 사람들은 10~20여 개씩이나 되었지. 아버지께서는 마을 사람들이 건져 올린 재목들을 사들여서 송판을 켜서 학교 지을 건축 자재를 마련하였어” 라고 말씀해 주셨다.

학교 지을 때 비화(秘話)가 있었는지도 윤우식 씨에게 물어보았다.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지. 해방되면서 바로 학교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학교를 짓는 중에 마을 사람 3명이 경무대 경찰서에 ‘개인이 학교를 짓는다’ 고 투고(投告, 필자주:投書를 말함)를 했어. 이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께서 경무대에 올라가서 이승만 대통령께 해명을 하셨지. 일제강점기에 공출미를 찧는 방앗간을 운영하여 돈을 꽤 많이 벌었는데, 사립학교를 설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이 엄정국민학교를 다니는데, 멀기도 하고 여름에 장마가 지면 냇물을 건너지 못해서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있어서 학교를 지어 나라에 기부체납을 할 것이라고 하셨지. 이 말을 들으신 이승만 대통령께서 훌륭한 일을 한다고 칭찬을 하시고 짚차를 내주셔서 목계까지 짚차를 타고 내려오셨지. 학교를 다시 짓기 시작하자 당시 엄정면 민선 면장이었던 이효승 면장이 면소재지가 아닌 목계에 왜 학교를 세우느냐고 도청에 항의하자 누군가 연락을 해줬어. 아버지께서 도청에 찾아가 대통령이 허락한 사실을 이야기해서 학교 건축은 다시 시작되었어. 목계 주민들이 학교 짓는데 정말 열심히 협조해줘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어. 그 결과 6·25 전에 학교가 개교하게 되었지(목계면지의 기록에 보면 1948년 9월 1일 엄정초등학교 목계분교장으로 개교하였다). 목계국민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자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 이상욱 교장을 아버지께서 도교육청에 요청하여 목계초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재발령이 나도록 하였어. 그런데 교장 사택이 없어서 개교한 후에 짓게 되었어. 사택을 건축할 만한 땅으로 이효승의 밭이 내정되었는데 기증을 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어. 할 수 없어서 아버지께서 대토를 하기로 하였지. 그래서 이효승의 밭 560평을 우리 논 8마지기(1,600평)를 주고 맞바꿔 사택을 지었어. 그런데 학교에 부지를 기증하였다는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목계초등학교가 설립되는 과정의 어려움도 알 수 있었고, 그에 얽힌 일화들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윤우식 어르신과 좋은 인터뷰가 되도록 함께해 주신 윤태호 어르신에게 감사드린다.

[정보제공]

  • •  윤우식(남, 목계리 주민)
  • •  윤태호(남, 75세, 목계리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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