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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당 서낭신상은 다시 그렸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20103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부흥산 돌계단은 급경사여서 양쪽에 만들어 놓은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야 안전하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한 숨을 돌리면 목계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는 부흥당이 앞을 막아선다. 부흥당 문은 항상 자물쇠로 잠겨 있다. 문을 열면 당내에는 세 분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중앙 정면에는 서낭신도(城隍神圖)가, 정면에서 보아 서낭각시의 오른쪽에는 산신도(山神圖)가, 왼쪽에는 용왕신도(龍王神圖)가 봉안되어 있다.

산신은 흰색 도포를 입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발목까지 붉은색 천을 걸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모자를 쓰고 있는데, 흰 수염이 긴 모습이 근엄한 할아버지를 닮았다. 기암과 폭포와 꽃가지가 드리워진 가운데 왼쪽에 동자가 시립하고, 꼬리를 치켜든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호랑이는 소나무 아래 풀밭에서 포효하고 있는데 이빨과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으며, 꼬리 위로 치켜 올린 채 두 발을 한 곳에 모아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를 취하고 있다.

용신은 그 자체로서 용왕의 이미지를 금방 느낄 수 있다.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있으며, 곤룡포(袞龍袍)와 비슷한 두루마기를 걸쳤는데 양어깨와 가슴부분에는 ‘보(補)’라고 일컫는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五爪龍)이 그려져 있다. 외부의 배경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하게 암벽이 드리워져 있으며, 오른쪽에 동자가 시립하고 아래에는 파도가 일렁이는 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용왕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서낭신은 ‘서낭각시’라고 하는데 쪽을 진 머리에 긴 비녀를 꽂았으며, 저고리는 붉은 바탕에 꽃무늬 수를 놓았다. 귤색 치마를 입고 두 손을 저고리 끝 부분에 모았으며, 서있는 모습이다. 바탕에는 몇 개의 산봉우리들이 그려져 있다.

오래도록 마을 일도 보고 관심을 갖고 있는 김현해 씨와 강광남 씨에게 부흥당의 신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부흥당의 신상들은 예전부터 있던 그대로가 아니었고, 몇 년 전에 서낭각시도가 없어져서 다시 그렸다고 한다. 옛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서낭각시의 성은 문(文)씨고, 이름은 순자라고 한다. 그러나 ‘문순자’라는 신격 대상이 어떤 신화에 근거한 것인지는 아는 이가 없다. 그림이 없어져서 변진수 씨가 서울에 가서 다시 그림을 그려올 때 그곳의 화상인 신씨가 전에도 그 그림을 자신이 그려준 적이 있어서 서낭각시의 이름이 문순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확인해 본 결과, 부흥당에 모셔졌던 서낭각시도는 4가지 그림이 모셔졌던 것이 확인되었다. 『충주시지(忠州市誌)』에 실린 서낭각시도는 원삼을 입고 긴 비녀를 꽂았으며 머리 위에는 족두리를 썼었는데 없어졌고, 『충주의 향토사(忠州의 鄕土史)(마을신앙편)』(충주문화원, 2001)를 보면, 1997년 조사된 바에 의하면 서낭각시도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으며 앉아있는 모습이었는데 같은 벽면 동쪽(오른쪽)에 용왕도, 서쪽(왼쪽)에 산신도가 모셔져 있었다. 1999년에 시의 지원으로 지붕을 다시 올리고 단청을 하고 다시 모신 화상은 머리에는 고깔을 썼고 목에는 염주를 걸었으며, 손에도 염주를 들고 있었다. 저고리와 치마는 모두 흰색으로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무당들이 원래의 화상을 가져가고 자기들의 뜻에 맞는 신상으로 대체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용왕도는 서쪽 벽면에 모셨고 산신도는 동쪽 벽면에 모셔서 1997년의 방향과 반대로 모셨다.

마을 관계자들이 예전 것과 너무 다른 모습에 현재의 화상으로 모시고 부흥당 문을 자물쇠로 걸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정보제공]

  • •  김현해(남, 전 목계1리 이장)
  • •  강광남(남, 목계1리 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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