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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운항을 빌던 뱃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20104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목계의 뱃고사는 일년 내내 무사 운항을 비는데 목적을 두었다. 예전에는 제일(祭日)을 정월 특정일로 고정하였고 제장(祭場)을 나루터(선착장)로 삼았으며 선주나 뱃사람이 직접 제관이 되어 행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1925~1930년 사이에 중부 내륙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통되었고, 충주-조치원간 충북선 열차가 개통되면서 목계나루의 활기가 점차 시들해졌다. 또한 1973년에 남한강에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되면서 나룻배마저도 사라지면서 뱃고사도 단절되고 말았다.

한양(서울)에서 소금과 어물을 실은 배가 올라오면서 가장 위험한 곳 중의 하나가 막희락탄(莫喜樂灘)[마흐래기]이었다. 이곳은 가금면 가흥리소태면 양촌리 사이에 있는 여울로 강 가운데에 수많은 암석이 산재하여 상선이 통과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난항처(難航處)였다. 그래서 많은 상선의 파선(破船)으로 막대한 손해를 당한 상인들이 목계의 영산인 부흥산 아래 모신 부흥당에 무사한 운항을 비는 고사를 드렸다고 한다.

목계마을에 사시는 송영진 할아버지께서는 “정월 열 나흗날엔 항시 뱃고사를 올렸는데, 다리가 생기고 나서 그만 사라졌지. 그때는 보름 전부터 선착장에 금줄을 쳐놓고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한테 경비를 갹출해서 정성을 다했지…….” 라고 말씀해 주셨다. 송영진 할아버지의 말씀을 통해 나루터나 선착장을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고사 지낼 비용을 미리 염출하여 마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상인들은 배가 떠날 때는 부흥당에서 고사를 올리고 선착장에서 뱃고사를 지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금은 목계 주민들이 뱃고사를 재현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음력 정월 9일 당고사를 지낸 다음 나루터 선착장으로 내려와 뱃고사를 지냈다. 풍물을 놀며 부흥당에서 내려와 뚝방길을 따라 가다가 강둑 아래로 난 길을 내려가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정박하고 있는 배 위에서 지냈다.

황포 돛단배 위에 제물을 진설하고 부흥당고사와 같은 순서로 뱃고사를 지냈다. 뱃고사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이 노인정에 모여 음복을 하였다. 남녀노인정이 따로 있어서 음식을 나누어 음복을 하고 옛일에 대한 회고담을 나누면서 하루를 보냈다.

[정보제공]

  • •  송영진(남, 목계리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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