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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마을 지킴이, 김현해·강광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D030106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어경선

목계마을의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해 목계정류소(문화수퍼)에서 목계1리 전·현직 이장인 김현해 씨와 강광남 씨를 만나 목계마을의 문화와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낭각시는 여러 번 바뀌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은 알 수 없고, 근래에는 족두리를 쓴 화상이 있었는데 없어진 후 흰옷에 고깔을 쓴 화상을 잠깐 모셨으나 마을 사람들의 여론이 원래 모습과 너무 다르다고 하여 다시 모신 것이 현재 화상이다. 그전에는 부흥당의 출입문이 열려진 상태로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의논을 거쳐 출입문을 잠그기로 결정하여, 자물쇠를 걸었다고 한다.

별신제는 부흥당 당고사나 뱃고사와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당고사는 마을 사람 중심이었지만, 별신제는 외지에서 들어온 무당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별신제가 시작되기 전에 무당들이 미리 와서 분위기를 돋우고 추렴도 해서 기금을 마련한 다음 별신제를 지냈다. 별신굿은 무당들이 굿을 담당하였다. 음력 4월 초파일 별신굿을 할 때는 충주의 무당들이 모여 굿을 하였다. 동네를 위해 광대놀이, 굿을 하는데 규모는 줄다리기 다음이었다. 2~3일 간 별신굿을 하는데 예전에는 무당들이 정말 많았으나, 요즘에는 무당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행사가 있을 때에는 충주에 있는 무당들을 불러서 구색을 갖추고 있다. 예전에는 법도(法度)있게 8도의 무당들을 불러와 신을 맞아들이고 놀리고 또 보내고 하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제물로 무조건 쇠머리를 올렸고, 영신굿은 무당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 제관들이 그대로 따랐고 강가에 포장을 치고 했던 별신굿(오신굿)은 팔도 무당들이 밤낮없이 몇 일 동안 축원을 하니까 사람들이 서로 비느라고 떠들썩하였다. 그런 다음에 다시 부흥당신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로 별신굿이라고 한다.

줄다리기의 줄을 만들 때에는 동계와 서계가 나누어 만들었다고 한다. 동계와 서계는 동네 가운데를 지나가는 도랑을 중심으로 나누었다. 동계는 말산(오종산이라고도 한다)에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목계나루터 뒤로 산을 밀어버려서 평지가 되었다. 서계는 샘터산에서 만들었는데 반점 뒤에 남아 있다. 마을을 나눌 때는 도랑이 중심이 되지만,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서편은 갈 서쪽, 즉 가금, 앙성, 경기도가 포함되고 동편에는 엄정, 산척, 충주, 제천, 강원도에서 온 사람들이 속했다. 전하는 말로는 10만 명이나 모여서 목계 주민들도 잘 곳이 없었다. 구경 온 친척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목계에는 몇 백 년 된 산소들이 있다. 김해김씨, 평양조씨, 김해허씨, 파평윤씨들의 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허정승의 묘는 쌍분이고, 조판서의 묘에는 석인상이 있다.

[정보제공]

  • •  김현해(남, 전 목계1리 이장)
  • •  강광남(남, 목계1리 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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