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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기 씨를 통해 완성된 마수리 농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E020101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기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는 현재 중요 민속자료인 중원 농요의 전승지로 유명하다. 이 농요(일명 탄금대 방아타령)는 1972년 제13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 때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또한 마수리 농요는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5호가 되었으며, 이를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매년 시연을 하고 있다.

충주 마수리 농요(忠州 馬水里 農謠) 또는 중원 농요는 충주 지역에서 예부터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래이다.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잊혀져가던 농요를 1968~69년 지남기 씨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리꾼이 선소리를 하면 주민들이 뒷소리를 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1970년대 초반 지남기 씨를 중심으로 신니면 마수리 마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마수리 농요는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국태민안을 비는 ‘고사덕담’이다. 이것은 1972년 당시에는 없었으나 문화재 전문위원이던 국악학자 이보형 선생의 조언에 따라 넣게 되었다. 2부는 남자들이 벼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행하는 농요로 이루어져 있다. 벼농사는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로 이어지는데 이들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2부를 이룬다.

여기서 모찌기란 모판에 있는 어린 벼를 뽑아 운반하기 좋게 묶는 작업을 말한다. 모심기는 모판에서 찐 어린 모를 논에다 옮겨 심는 작업을 말한다. 김매기란 모가 자라면서 주변에 잡초도 함께 자라는데 이 잡초를 뽑아주는 작업을 말한다. 이들 세 작업과정이 어렵고 힘들어 자연스럽게 농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래가 ‘절우자’이다. 절우자는 모찌기 노래의 후렴구에 나오는 ‘절우자 절우자 이 모자리를 절우자’라는 가사에서 나왔다. 절우자가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라성’이다. 아라성 역시 모심기 노래의 후렴구 ‘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아라성아’에서 나왔다. 아라성이라는 표현은 정선 아리랑 가사와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가 ‘방아타령’과 ‘어화굼실 대허리야’이다. 방아타령은 아이 김매기 노래이고 대허리야는 두벌 김매기 노래이다. 방아타령에는 ‘에헤히 여라 방아호’라는 후렴구가 있고, 대허리야에는 ‘어화굼실 대허리야’라는 후렴구가 있다.

3부는 여자들이 벼를 탈곡하거나 갈을 뜯거나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가 ‘긴 방아타령’, ‘자진 방아타령’이다. 후렴구에 ‘덜커덩 쿵더쿵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놀아나 볼까(밤 마실 가나)’가 나온다. 또 긴 방아와 자진 장아 중간에 중거리 방아가 있으나 지금은 시간관계상 생략한다.

이러한 마수리 농요의 선율은 남한강변 충청도 지방의 독특한 맛을 보여준다. 절우자(모찌기 노래), 아라성(모심기 노래), 어화굼실 대허리야(논매기 노래) 등은 모두 메기고 받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 노작요인 긴 방아, 중거리 방아, 자진 방아 역시 주고받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메김소리가 4음보로 긴 편이다.

전체적으로 마수리 농요는 약 50여 명(남자 20명, 여자 30명 정도)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날라리(태평소)의 선율과 꽹과리, 북, 징 등의 타악기 리듬에 맞춰 모찌기, 모심기, 아이 논매기, 두벌 논매기, 추수, 방아 찧기 등을 보여준다. 이때 남자들은 중의적삼에 흰바지를 입고 상투를 틀었다. 초혼자만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여자들은 흰 적삼에 검정 치마를 입고 머리 뒤에 쪽을 쪘다.

마수리 농요는 발굴된 지 20여년이 지난 1994년 12월 30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중원 마수리 농요보존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농요를 좀 더 조직적 체계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마수리 농요를 발굴하고 완성시킨 지남기 씨가 1995년 중풍으로 쓰러져 마수리 농요가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남기 씨가 계속 공연에 조언을 하였고, 또 당시 마수리 농요보존회장을 맡았던 박기서 씨 등의 노력으로 마수리 농요 공연은 계속될 수 있었다. 젊은 박재석 씨가 지남기 씨의 후계자가 되어 1997년까지 지남기 씨로부터 기능을 전수받기도 했다. 2005년 지남기 씨가 사망한 후 마수리 농요는 기능 보유자인 박재석 씨와 최종남 씨(여성 노작요 기능전수자)를 중심으로 시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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