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55
한자 大邱 鳩岩洞 兵營址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로 378[구암동 787]|구암서로 22[구암동 78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청동기시대~남북국시대 -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8월 1일~1998년 11월 15일 -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 -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로 378[구암동 787]|구암서로 22[구암동 788]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병영지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및 남북국시대 병영지 유적.

[개설]

대구광역시 칠곡 3택지의 개발에 앞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1997년 8월 1일부터 1998년 11월 15일까지 2구역과 3구역에 대하여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구역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는 돌무지[적석유구(積石遺構)] 1기, 도랑 11기, 기타 2기 등 14기가 확인되었고, 남북국시대 유구는 구덩이[竪穴遺構] 331기, 도랑[수혈유구(溝狀遺構)] 32기, 고상건물지 39기, 주열(柱列) 3기, 기타 1기 등 406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구에서는 민무늬토기와 홍도(紅陶), 석기(石器) 등 약 20점이 출토되었고, 남북국시대의 유구에서는 회청색경질토기편, 기와편, 각종 철기, 청동 유물 등 약 990여 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금호강 북쪽에는 칠곡 분지로도 불리는 팔거천 하류역에 형성된 충적지가 남북으로 가늘고 긴 형태를 띠고 있다.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大邱鳩岩洞兵營址遺蹟)은 칠곡 분지 북쪽 가장자리 팔거천 동안에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787번지, 788번지이다. 도덕산[660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소하천인 반포천 동안의 충적지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대구 국우동 유적, 서쪽으로는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남쪽 구릉상에는 대구 구암동 고분군이 있다.

[형태]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은 유적 전체가 기둥구멍과 바깥도랑[外溝]에 의하여 동서로 구획된 공간 배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제한된 범위 내에 수혈 유구 331기가 밀집 분포되어 있으며, 도랑과 39기의 고상건물지가 조합된 배치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수혈은 규모와 형태가 다양한데, 규모가 큰 수혈일수록 세장한 장타원형 내지 말각세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수혈의 명확한 성격을 알 수 없거나 폐기와 관련될 것으로 추정되는 수혈유구가 대부분이며, 일부 제한된 수혈만이 용도를 추정하여 볼 수 있다. 불을 지핀 흔적과 목탄, 말뼈, 백합 등이 확인된 일부 수혈유구[가-44호, 나-51·58호]는 조리 행위가 있었고, 말각장방형을 띠며, 북쪽에 출입구를 두고 남쪽에 간이 저장시설을 배치한 형태의 주거용으로 볼 수 있는 수혈[나-50호]이 있다. 그리고 내부 유기물 층에서 편충·회충 등의 기생충이 검출되어 화장실 유구로 파악된 수혈[가-47호]이 있다.

고상건물지는 1×1칸, 1×2칸, 1×3칸의 형태가 가장 많으며, 2×3칸, 3×3칸의 형태도 확인되었다. 고상건물지는 범람의 피해가 우려되는 하천변 입지와 하부에 유기물 층이 존재를 감안하면 방습(防濕)이나 배습(排濕)의 효과를 위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열은 가구역에서 굴립주열(掘立柱列)과 목주열(木柱列), 나구역에서 주혈열(柱穴列)이 확인되었다. 가구역 굴립주열은 남북 92m, 동서 82m의 대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북편과 남편 서쪽 끝에서 망루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나구역 주혈열은 남북 68.8m, 동서 53.2m의 규모로 확인되었고, 4곳에 부속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가 2,213점, 기와가 798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토제품 30점, 와제품 16점, 석제품 87점, 청동 유물 149점, 철제 유물 385점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에는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그릇받침[器臺], 사발[碗], 병, 소병(小甁), 편병(扁甁), 굽다리항아리[臺附壺], 시루 등이 있다. 철제 유물에는 쇠화살촉[鐵鏃], 쇠검[鐵劍], 소도(小刀), 소찰(小札) 등의 무구류, 쇠도끼[鐵斧]와 따비 등의 목공구류, 쇠호미[鐵鋤], 보습, 호비칼 등의 농구류, 쇠솥 등의 용기류가 있다. 청동 제품에는 무기류와 숟가락 젓가락[匙箸], 국자, 손칼, 족집게, 동곳, 거울 조각 등의 생활용품, 장식품, 동전 등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경덕원보(景德元寶) 2점의 동전이다.

[현황]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은 발굴 조사 완료 후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유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주변 평지 대부분도 개발이 이루어져 도시화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구암동 병영지 유적에서 확인된 큰 성과는 병영과 관련된 대규모 관방 유적의 조사이다. 이러한 관방 유적은 대체로 산지에 있으나 팔거천 충적평야에 형성된 평지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유적 전체를 의도적으로 구획하고, 구획된 공간을 분할하여 특수한 용도로 사용한 점도 주목된다. 중국 백자편과 개원통보가 출토되어 당시 국제 교역의 유통 관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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