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규 위도동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68
한자 院規 爲道東作
영어공식명칭 Rules To Be Followed In Dodong Seow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3년 - 「원규 위도동작」 저자 정구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20년 - 「원규 위도동작」 저자 정구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80년 - 『한강집』 간행
배경 지역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도동리 35]지도보기
성격 잡저|원규
작가 정구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지은 도동서원의 규범.

[개설]

「원규 위도동작(院規爲道東作)」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서(禮書)를 편찬하였다. 정구는 말년에 칠곡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일대]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대구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유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도동서원(道東書院) 등 많은 서원에 제향되었다.

도동서원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배향하기 위하여 지어진 서원이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서원 철폐령에도 철폐되지 않은 47곳 서원 중 하나이다. 정구김굉필의 외증손이며 임진왜란으로 유실된 도동서원 중건을 관장하였다.

[구성]

「원규 위도동작」도동서원에서 지켜야 할 여덟 개의 규범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원규 위도동작」의 규범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향사를 공경히 한다[謹享祀]

2. 원장을 존경한다[尊院長]

3. 유사를 가려 뽑는다[擇有司]

4. 신진을 받아들인다[引新進]

5. 앉는 차례를 정한다[定坐次]

6. 강습에 힘쓴다[勤講習]

7. 어진 선비를 예우한다[禮賢士]

8. 금지하는 것과 예방하여야 할 것을 엄히 한다[嚴禁防]

위와 같이 여덟 개의 항목으로 분류하고, 정구의 의론(議論)이 항목별로 기술되어 있다.

[특징]

「원규 위도동작」은 규범과 규칙, 그리고 행동강령을 모두 아우르는 원규(院規)이다. 단순한 규칙 항목의 나열이 아니라, 도동서원 운영에 대한 정구의 생각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원규 위도동작」도동서원의 교칙이며, 연경서원과 더불어 대구 지역 서원 운영의 표본을 제공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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