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57
한자 靑銅器時代 遺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김병섭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

[개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청동합금을 도구로 만들면서부터 시작하여 철기가 도구로 대체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청동기보다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의 등장을 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며, ‘무문토기시대(無文土器時代)’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시작과 함께 간석기[磨製石器]의 제작 기술이 발전하여 다양한 석기가 제작·보급되고, 농경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며, 방어시설[環濠]을 갖춘 대규모 마을이 등장하며, 제사 관련 시설이 등장한다.

[대구 지역의 청동기 유적]

대구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은 금호강의 본류보다 지류 하천 주변에 형성된 자연제방, 범람원, 선상지와 낮은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를 중심으로 대규모 취락과 무덤이 형성된다. 대구 지역은 하천수계에 따라 금호강 북쪽의 팔거천·동화천 유역권, 동쪽의 욱수천 유역권, 중동부의 신천 유역권, 서남부의 진천천 유역권 등 4개의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팔거천·동화천 유역에서 대표적인 유적은 서변동·동천동·동호동·매천동 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전기와 중기의 마을 유적과 구획된 경작지, 하도, 무덤이 확인되었다. 서변동·매천동 유적의 하도에서 목제도끼자루 등의 목기가 다량 출토되어 주목되었고, 동천동 유적에서는 중기 송국리식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와 더불어 대구 지역의 특징인 동천동식집자리[東川洞式住居址]가 다수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마을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욱수천 유역은 고산 선상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 유적은 선정, 선앙, 선단까지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선단부에는 시지동 고인돌Ⅰ·Ⅱ, 매호동 고인돌Ⅰ~Ⅳ, 사월동 고인돌Ⅰ·Ⅱ 등 고인돌군이 동-서향으로 늘어서 있으며, 주변으로 소규모의 취락이 확인되는데, 겹입술토기[二重口緣土器]가 집자리에서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선정과 선앙의 욱수동 일대에 소규모의 취락과 무덤이 확인된다.

신천 유역은 중류부 동안에 파동 고인돌, 상동 고인돌Ⅰ·Ⅱ, 중동 고인돌 등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고, 상동 유적에서 전기와 중기의 대규모 취락이 함께 확인되고 있다. 중·하류부 서안에는 이천동 고인돌Ⅰ~Ⅴ, 대봉동 고인돌 Ⅰ·Ⅱ, 삼덕동 고인돌, 동문동 고인돌, 태평로 고인돌, 칠성동 고인돌 등이 남-북향으로 늘어서 있고, 대봉동 유적삼덕동 유적 등에서 전기와 중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 새김덧띠무늬[刻目突帶文土器]가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송국리식집자리가 확인되는 중기까지 이어져 조성되어 있다.

진천천 유역은 월배 선상지 일원에 유적이 형성되어 있는데, 선앙부에 상인동 고인돌Ⅰ~Ⅳ, 상인동 선돌[立石], 월성동 고인돌Ⅰ~Ⅳ, 진천동 고인돌Ⅰ~Ⅳ, 진천동 선돌[사적] 등이 북동-남서향으로 늘어서 있다. 월성동 유적대천동 유적 등의 선단부 유적에서는 새김덧띠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겹입술짧은빗금무늬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가 출토되는 초기와 전기의 집자리가 주로 분포하며, 월성동 유적상인동 유적, 진천동 유적 등 선앙과 선단부 넓은 범위에 송국리식집자리를 비롯한 중기의 마을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 지역에서 원형점토띠토기[圓形粘土帶土器]와 굽다리접시[豆形土器], 검은간토기 긴목항아리[黑色磨硏土器 長頸壺] 등이 출토하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마을과 무덤 유적은 많지 않다. 서변동 유적 하도와 상동 76유적 수혈에서 원형점토띠토기가 확인되었고 국우동 유적의 집자리 등지에서도 원형점토띠토기와 철기시대의 삼각형점토띠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지표조사에서 원형점토띠토기와 굽다리접시, 홈자귀[有構石斧] 등의 유물이 확인된 연암산 선사유적, 침산 선사유적, 월성동 선사유적, 괴전동 유적 등 하천 주변의 낮은 구릉에 큰 규모의 마을 유적이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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