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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259
한자 玄風邑誌
영어공식명칭 Hyeonpung 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류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현풍읍지』 간행
소장처 교토대학 가와이문고 - 일본 교토[京都]
성격 읍지
권책 1책
행자 11행 23자
규격 35.0×24.0㎝
권수제 현풍현

[정의]

1903년 간행된 경상도 현풍현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현풍읍지(玄風邑誌)』는 1903년(광무 7) 1책으로 간행된 현풍현의 읍지이며,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현풍읍지』는 책의 구성과 내용으로 보아 1786년(정조 10)경 편찬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현풍현읍지(玄風縣邑誌)』를 필사하여 1903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현풍읍지』의 표제는 ‘현풍읍지(玄風邑誌)’이며, 내제는 ‘현풍현’이다. 권말에는 1903년 중추(仲秋)에 ‘후손 문한 근서(後孫文翰謹書)’라는 지기(識記)와 현풍현의 채색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35.0㎝, 가로 24.0㎝이다. 본문은 11행 23자로 배열되어 있다.

[구성/내용]

『현풍읍지』현풍현의 강계(疆界)에 대해 먼저 밝히고, 이어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관방(關防), 진보(鎭堡), 성지(城池), 창고(倉庫),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묘소(墓所), 불우(佛宇), 궁실(宮室),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어엄(魚塩),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人物), 효자(孝子), 열부(烈婦), 제영(題詠), 책판(冊板), 비판(碑板) 항목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관방·진보·목장 항목은 ‘원무(元無)’, 어엄 항목은 ‘본무(本無)’라고 기록되어 있다.

건치연혁 조에는 조선에 들어와서 현감(縣監)을 두었다고 하였으며, 산천 조에는 비슬산(琵瑟山)을 비롯하여 대니산(戴尼山), 차천(車川) 등 위치가 실려 있고, 풍속 조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현풍의 덕화가 융성하네[玄風德化隆]”라고 읊은 시를 인용하였다.

방리 조에는 읍내(邑內), 동부면(東部面), 유가면(瑜伽面), 우만면(亏萬面), 말역촌(末亦村), 묘동면(妙洞面), 구지산면(求智山面), 왕지면(旺旨面), 답곡면(畓谷面), 산전면(山田面), 오설면(烏舌面), 마산면(馬山面), 모로촌면(毛老村面), 진촌면(津村面), 거을산면(巨乙山面), 논공면(論工面), 서부면(西部面)의 위치와 관문(官門)에서의 거리를 부기하였다.

호구 조에는 신묘식 원호(元戶) 3,410호, 인구 11,049명[남자 5,531명, 여자 5,518명]을 수록하였다. 전부 조에는 원장부(元帳付) 한수전(旱水田)이 총 4,329결 정도인데, 그 가운데 한전(旱田)은 2,934결, 임진(壬辰) 세기(歲起) 1,496결이고, 수전(水田)은 1,395결, 임진 시기(時起) 1,162결이며, 삼수량(三手糧)과 대동(大同) 등 부세(賦稅) 내역도 기재하였다.

학교 조에는 향교와 도동서원(道東書院), 예연서원(禮淵書院), 송담향사(松潭鄕祠), 청백사(淸白祠) 등을 기록하였고, 단묘 조에는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여제단(厲祭壇), 기우단(祈雨壇), 포제단(酺祭壇)을 수록하였다.

누정 조에는 앙풍루(仰風樓) 등 정자 7곳을 적었는데, 모두 “지금은 없다”라고 하였다. 제언 조에는 황제언(黃堤堰), 말지방언(末之坊堰), 사배언(沙背堰), 금사언(金寺堰), 공수택(公須澤)의 위치와 둘레, 수심을 기재하였다. 장시 조에는 읍시(邑市)와 차천시(車川市)가 있다.

환적 조에는 조선시대 현풍에 부임한 지방관의 이름과 도임·이임 연도의 간지(干支)를 적었고, 과거 조에는 고려와 조선으로 나누어 급제자를 적었는데, 각각 등제한 해의 간지와 역임한 최고 관직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인물과 효자, 열부의 행적을 함께 수록하였다. 인물에는 특히 현풍을 본관으로 하는 곽씨(郭氏)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의의와 평가]

『현풍읍지』는 1786년경 편찬된 『현풍현읍지』를 필사한 읍지이며, 환적·과거·인물·효자·열부 등 인물 관련 항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현풍읍지』는 18세기 후반 현풍현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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