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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622
한자 馬鳴
영어공식명칭 Ma M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마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마명 건설사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마명 북풍회 집행위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마명 진우연맹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27년 7월 5일 - 마명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월 15일 - 마명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출생지 인교동 -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진우연맹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마명(馬鳴)[1906~?]은 190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조직인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담하였으며, 건설사(建設社)·조선노농총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본명은 정우호(鄭宇鎬)이고, 마승주(馬昇宙)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마명은 1923년 사상단체 건설사 결성에 참여하였고, 1924년 7월 해방운동사(解放運動社) 결성에 참여하여 김재명(金在明) 등과 함께 7인의 경영책임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924년 4월 18일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서 기초위원과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조직된 야학 형태의 교육기관인 관서일야원(關西日夜院)의 조선 공연을 후원하였다. 9월에는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1월 25일 북풍회(北風會) 창립총회에 참가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3월 화요회가 주도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회에 참여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담당하였으며, 4월에 열린 제6회 기자대회에 참석하였다.

마명은 1925년 9월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정명준(鄭命俊)·서학이(徐學伊)·정해룡(鄭海龍)·안달득(安達得)·서동성(徐東星)·하종진(河鐘璡)·김동석(金東碩) 등과 무정부주의 성향의 비밀결사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였다. 10월에는 8월 대구노동친목회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축사한 내용이 「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고, 11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되어 출소하였다.

마명은 1926년 2월 대구에서 문예잡지 『혁조(革造)』를 3월에 창간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7월 중순 잡지 혁조사를 경영하던 정흑도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힌 뒤 신재모·우해룡(禹海龍)·방한상(方漢相) 등과 함께 검거되었다. 마명은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 1월 15일 만기 출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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