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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747
한자 國立劇場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53년 2월 13일연표보기 - 국립극장 개관
이전 시기/일시 1957년 6월 1일 - 서울의 구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61년 12월 31일연표보기 - 국립극장에서 키네마극장으로 개칭
성격 극장

[정의]

1950년대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던 국립극장(國立劇場).

[건립 경위]

6·25전쟁으로 인하여 서울의 국립극장을 사용할 수 없어 대구의 문화극장을 환수하여 국립극장으로 사용하였다.

[변천]

국립극장은 1952년 12월 15일 자로 대구의 문화극장[구 키네마]을 접수하여 수리한 후 1953년 2월 13일에 개관하였다. 개관 공연 작품으로 윤백남 작 『야화』[4막 7장]를 원우전 장치와 서항석 연출로 막을 올렸다. 1953년에는 3월 9일부터 창조무대의 『인생 초설』, 3월 29일부터 극단신청년의 『운명』, 5월 29일부터 『내가 낳은 검둥이』 등을 상연하였다. 1954년에는 1월 12일부터 신협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 4월 9일부터 극단공연극장의 『다정불심』, 8월 15일부터 극단고려의 『뒤주대왕』 등을 상연하였으며, 1955년에는 1월 1일부터 극단민극의 『양귀비와 안록산』, 11월 2일부터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의 『집』 등을 상연하였다. 1956년에는 1월 25일부터 극단군극의 『어둠을 뚫고』, 7월 29일부터 극단아랑의 『불타는 다보탑』, 11월 14일부터 대구대학극회의 『개골산』 등을 상연하였다. 1957년에는 1월 13일부터 신극동인협회의 『별』, 3월 5일부터 랑랑악극단의 『말 못할 사정에』, 3월 13일부터 창조극회의 『반역자』를 상연하였다.

1957년 6월 1일에 서울의 구 명동예술극장으로 이전한 후 1961년 12월 31일 관명을 키네마극장으로 바꾸었다.

[구성]

국립극장은 대구의 문화극장을 수리하여 사용하였다. 1957년 7월 당시 자가발전기 2대, 수용 인원 1,200명, 종업원 30명이었다.

[현황]

현재는 CGV한일로 영업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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