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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22
이칭/별칭 여도판희,초판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초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주로 부녀자들이 즐기던 민속놀이.

[개설]

널뛰기 는 주로 정초에 여자들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민속놀이이다.

[연원]

널뛰기 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으나, 매우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정조 때,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여염집 부녀자들이 몇 자 높이로 올라가며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초판희(超板戱)’라 한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항간의 부녀자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올려놓고 그 널판 양쪽 끝에 마주 올라서서 번갈아 뛰면 서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여 몇 자 올라간다. 한참 하면 힘이 빠지는데 지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이것을 여도판희(女跳板戱)라 한다. 정월 초까지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짚단이나 가마니를 받침으로 하고, 그 위에 길이 2m 정도, 폭 20~30㎝의 놓을 수 있는 널빤지를 준비한다. 장소는 긴 널빤지를 설치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나 공터면 적당하다.

[놀이 방법]

널뛰기 는 긴 널빤지 양쪽에서 한 사람씩 올라서서 한 사람이 뛰었다가 내리 누리는 힘의 반동으로 상대방이 뛰어오르는데, 이렇게 두 사람이 번갈아서 뛰어오르기를 반복하는 놀이이다. 널을 높이뛰기 위해서 줄을 맨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약간 느슨하게 밧줄이나 ‘수사줄’을 맨다. 이 줄은 끊어지지 않게 매우 질긴 것으로 사용하며, 그 높이는 초가집 지붕 정도로 높게 맨다. 한 손으로 계속 이 줄을 잡고 뛰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갈 때에는 옆에 있는 사람이 힘 있게 발로 굴러 준다. 그래서 뛰는 사람이 더욱 높게 오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이 밧줄은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서 뛰는 사람에게 몸의 균형과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 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널뛰기 는 섣달부터 정월까지 하는데, 명절에 주로 하는 여성 놀이였다. 옛 여성들은 멀리 다니는 일이 없고 주로 집안에만 있어 운동 부족이 있었는데, 널뛰기는 매우 활달한 놀이어서 신체 단련과 자세를 바로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널뛰기 는 도봉구에서도 많이 행해졌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는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이 증언한 널뛰기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정초에 여자들은 널뛰기를 즐겼으며, 널은 화덕이 걸려 있는 동네의 넓은 마당에 설치하였다. 대동에서는 여자들이 널을 뛰게 하기 위해서 좋은 널빤지를 사다 주었다. 널은 여자들만 뛰며 남자들은 뛰지 않았다. 만약 남자들이 뛰면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널이 부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짓궂은 총각들은 처녀들이 널을 뛸 때 널 밑에 딱총을 넣어서 여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갑자기 ‘딱’ 하는 화약 터지는 소리가 나면 여자들이 기절초풍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황]

널뛰기 는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정월에 집집마다 즐기던 놀이가 아니다. 이는 도봉구 뿐 아니라 서울특별시의 다른 구들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널뛰기는 우리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서 명절 때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2012년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도봉구청 광장과 중랑천 변에서는 ‘도봉 구민과 함께하는 정월 대보름 큰 잔치’가 열렸으며 여기에서 연날리기, 제기차기, 투호 놀이, 팽이치기 등과 함께 널뛰기가 행해졌다. 널뛰기는 이제 세시의 ‘일상적인 놀이’라기보다 ‘행사’처럼 되었지만, 여전히 구민 화합과 전통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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