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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164
한자 輓章
영어공식명칭 funeral lament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혜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상례 도구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상을 치를 때 상여 앞에 세웠던 상례 도구.

[개설]

만장(輓章)이란 초상이 나면 죽은 이를 애도하는 뜻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나 고인을 존경하던 사람이 종이 또는 천에 써서 보낸 글 또는 그러한 글이 적힌 깃발을 가리킨다. 서울에서는 대개 앞부분에는 ‘근조(謹弔)’라 쓰고, 이어서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다섯 자나 일곱 자로 된 한시(漢詩)를 적은 뒤 보내는 이의 본관, 후인(後人) 성명, 곡재배(哭再拜)라고 써서 마무리하였다.

[연원 및 변천]

여러 가지 색깔의 깃발 형태의 만장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상여를 장지(葬地)까지 옮기는 행렬의 앞부분에 위치하였다. 유교식 의례에 따라 상례를 치루고 상여로 운구했던 시기에는 만장이 유지되었으나, 일찍이 도시화된 동작구에서는 농촌과 달리 빨리 사라진 풍습으로 보인다. 아울러 1973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법률 제2604호] 제4조 ‘허례허식행위의 금지’ 1항 5호에서는 만장의 사용을 금지하고, 제9조 ‘벌칙’에서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로 규정한 것, 상여가 아닌 운구차를 이용하게 된 것도 만장의 소멸에 영향을 미쳤다.

[형태]

1992년 1월 당시 3대째 흑석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금용[1915년생, 남]의 구술에 따르면, 흑석동에서 상례 행렬은 맨 앞에 혼백, 이어 만장, 그 다음에 상여, 상주 이하 상제가 따랐다. 만장의 내용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졌는데, 한금용이 예로 든 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만장

등장인생일몽장(登場人生一夢場)[세상에 나와 한평생 한 자리의 꿈같구나]

부로해제영결지(父老孩提永訣地)[어른이나 어린 아이나 영원히 헤어지는 자리니]

내하감인송사행(奈何敢忍送斯行)[어찌 감히 내 차마 이 길을 보내리오]

해가호곡총처량(薤歌呼哭總凄涼)[상여소리 곡소리 모두 처량하구나]

친구에 대한 만장

통곡군령루불경(慟哭君靈淚不輕)[자네의 영전에서 통곡하니 눈물이 무겁구나]

요억소상한야월(遙憶瀟湘寒夜月)[중국 소상의 추운 밤 달을 까마득히 떠올리니]

여하선아상제경(如何先我上帝京)[자네는 어찌 나보다 먼저 하늘 위로 올랐는가]

인하척안인명성(忍何隻雁咽鳴聲)[외기러기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차마 어찌 들으리오]

글 동무에 대한 만장

소시수습매동연(少時修習每同筵)[어릴 적 공부할 때마다 항상 같이 자리하였는데]

무단홀연선화거(無斷忽然仙化去)[허락도 없이 갑자기 신선이 되어 가버렸는가]

만경회해상노년(晩境詼諧相老年)[늘그막에는 서로 늙었다고 익살스레 놀렸는데]

송군휘루석양천(送君揮淚夕陽天)[자네를 보내니 해질 무렵 하늘을 보며 눈물을 뿌리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시를 짓고 한문을 쓸 수 있던 계층의 상례 풍습이지만, 현대로 오면 내용보다는 적당한 관용구를 써서 만장을 보내는 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보다 널리 퍼졌다. 만장의 수가 많을수록 고인의 부와 권세, 학식 등이 높고 운구 행렬이 성대하다고 여겨지면서, 만장이 지닌 장식적이고 과시적인 효과가 중시되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포목점 같은 곳에 부탁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를 맞춰서 상가에 보내는 일도 흔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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