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039
한자 改新敎
영어공식명칭 Protestantism
이칭/별칭 신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방원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6년 - 장로교 노량진교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6년 - 감리교 흑석동교회[한남제일교회, 현재 새론교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 성결교 상도성결교회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 상도교회가 노량진교회에서 분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7년 - 숭실대학교 상도동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5년 - 총신대학교 상도동 입주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개신교 활동에 대한 개관.

[개설]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출발한 기독교의 주요 분파이다. 기독교는 11세기에 정교회와 가톨릭이 분열하였고,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여러 교파가 분열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회의 전통보다는 성서를 우선으로 하고 개인의 신앙에 기초를 둔 교회공동체를 주장하며 교황제도에서 분리하였다. 한국의 기독교 전파는 가톨릭의 경우 1794년에 주문모 신부를 파송함으로써 본격화되었고, 개신교의 경우에는 1884년 장로교 선교사 알렌[Horace Newton Allen]의 입국, 1885년 미국 북장로교의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파송, 미국 북감리회의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와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파송으로 본격화되었다. 그 후 1889년 호주장로교, 1890년 성공회, 1892년 미국 남장로교, 1895년 미국 남감리회, 1898년 캐나다 장로교, 1904년 재림교회, 1906년 정교회, 1908년 구세군 선교사가 입국함으로써 다양한 교파의 선교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 최대의 개신교단인 장로교는 여러 차례 분열을 겪는다. 1952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가 분리했고, 195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리했고, 1959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내에서 통합 측과 합동 측이 분리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의 분열과 독자적인 교단의 존재로 인해 장로교 안에 많은 분파가 존재하게 되었다.

[동작구의 개신교 전래와 성장]

1. 개신교 전래

서울의 개신교회 설립은 1885년으로 소급된다. 일반적으로 1885년에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신자들과 예배를 드린 것을 새문안교회의 출발로,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신자들과 예배를 드린 것을 정동교회의 출발로 간주한다. 1906년에 새문안교회의 지교회(枝敎會)로 노량진교회가 설립됨으로써 동작구에 개신교가 전파되었다.

1906년 일제가 노량진에 인천수도공사를 설립하자, 흑석리 무당촌 주민들은 일제에 의한 토지와 가옥의 무단수용을 염려하여 교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새문안교회의 이원순을 청하여 사육신묘 근처에 교회를 세웠다. 설립 초기에는 조선 독립을 위해 애썼던 헐버트 선교사가 예배를 인도하였고, 그 후에도 새문안교회 목회를 담당하던 언더우드클라크가 순회를 통해 교회를 지원했다.

2. 교단의 정착

감리교는 1936년에 흑석동교회[현재 새론교회] 설립을 통해 시작되었다. 흑석동교회는 일본인 기노시타 사카에[목하영(木下榮)][1887~?]에게 대지를 기증받고 정동교회의 후원을 받아 예배당을 건축하였으며, 정동교회 지교회로 출발하였다. 또 1946년에는 전도사 이용순이 상도동 지역 최초의 교회인 상도성결교회를 설립하면서 성결교가 시작되었다.

노량진교회 설립을 통해 시작된 장로교는 교회의 분리를 통해 각 지역에 자리 잡았다. 1946년에 노량진과 교통이 원활하지 않던 지역 주민들이 상도동 기도처를 만들었다가 상도교회로 독립하였다. 1954년에는 송학대교회명수대교회가 분리하여 설립되었고, 1965년에는 상도교회에서 남현교회가 분리되었다.

한편 1938년에 폐교되었다가 서울에서 재건된 숭실대학교가 1957년 영등포구 상도동에 입주했다. 1965년에는 총신대학교사당동에 입주했다. 이로써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종합대학인 숭실대학교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신학교육기관인 총신대학교서달산 양편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독자적인 보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총회가 1955년부터 영등포구 신대방동[현 동작구 신대방동]에 본부를 두고 있다. 1974년 상도4동에 설립된 제일성민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복구총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3. 개신교계 신종교와의 관련성

긴 기간은 아니지만 동작구는 주요 개신교계 신종교의 역사와 관련된다. 1950년경 김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의 서울집회소가 상도동[현재의 숭실대입구역 근처]에 있었다. 이 시기에 흑석동에 거주했던 문선명이 김백문과 교류하여 통일교 교리에 영향을 받게 된다. 1960년대 국사봉 사자암 아래에 김종규가 이끌던 호생기도원이 있었다.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던 유재열이 1966년에 장막성전을 설립하였고, 장막성전이 과천으로 이주한 이후 1984년에 이만희가 분리하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만들게 된다.

4. 산업화 시기의 성장

동작구의 다수의 개신교회가 1960, 1970년대에 창립되었다. 제조업이 성장하고 서울과 동작구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 개신교가 함께 성장하였다. 각 교회는 처음에는 가정집이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였지만, 교인의 증가에 따라 교회가 부지를 매입하고 예배당을 짓고, 다시 주변 토지를 매입하여 확장하는 과정을 1980년대까지 보여주었다.

[동작구의 개신교 현황]

2015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종교 인구는 43.9%이고 개신교 인구는 19.7%이며, 서울의 개신교 인구는 24.2%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동작구의 개신교 인구에 관련된 통계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으나, 동작구민 1667명이 포함된 2019년 서울서베이 자료로 추정해보면 26%로 서울 다른 지역과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동작구에 등록된 개신교회의 수는 1994년 『동작구지』에서 232개소로 집계되었고, 2020년 코로나19 때문에 전수조사의 대상이 된 곳이 281개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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