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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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장승배기로 94[노량진동 350-15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일수 |
발단 시기/일시 | 1991년 - 장승철거를 위한 연합기도모임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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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91년 10월 - 1차 대방장승 훼손사건 발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94년 - 2차 대방장승 훼손사건 발생 |
발생|시작 장소 | 서울특별시교육청 동작도서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장승배기로 94[노량진동 350-150]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대방장승이 개신교 신도들에 의해 훼손된 사건
[개설]
현재 ‘장승배기’ 지명은 ‘장승이 있는 언덕배기’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부터 이곳에는 장승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인데, 하지만 이곳의 장승은 1930년대 일제가 ‘미신타파’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장승을 없앨 때 수난을 당하면서 없어졌다. 장승은 해방 이후 복원되었다가 6·25전쟁 때 다시 사라졌는데, 1991년 이를 복원한 것이 지금의 장승이다. 장승의 건립을 우상숭배라고 여긴 개신교도들에 의해 불에 타기도 하고 톱에 잘리기도 하는 수난을 당했다.
[역사적 배경]
현재의 장승배기 일대는 정조(正祖)가 화성에 있는 현륭원을 참배히기 위해 행차하던 중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조는 이곳에 남자의 형상을 한 천하대장군, 여자의 형상을 한 지하여장군 하나씩을 세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장승배기의 장승은 전국의 장승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대방장승’으로 불렸다고 하며,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서도 전국 장승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경과]
1991년 4월 지금의 장승배기 삼거리 동작도서관 앞에 충북 청양에서 100년된 밤나무를 구해 높이 4m, 둘레 60㎝의 장승 2구를 복원하기로 하여 가을 경 건립식을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해 9월 일부 개신교 목사·신도들이 장승 건립에 반대하면서 10월이 되어서야 세워지게 되었고, 건립 이후에도 철거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는 등 반발은 계속되었다. 장승 중 지하여장군은 건립 10일만에 방화로 몸체 전체가 불탄 뒤 복원되었다가 1994년 1월 다시 누군가에 의해 전기톱으로 몸통이 잘려나갔다.
[결과]
1994년 지하여장군이 잘려나가자 주민들은 새로 나무를 구해 복원하려 하였으나 마땅한 유실수를 구하지 못하면서 잘려나갔던 밑둥 부분을 철심으로 접합하는 방식으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