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489
한자 死六臣 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엄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12년(태종 12) - 하위지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17년(태종 17) - 박팽년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17년(태종 17) - 이개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18년(태종 18) - 성삼문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56년(세조 2) - 하위지, 박팽년,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사망
건립 시기/일시 1782년(정조 8)연표보기 - 사육신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사육신묘지공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노량진동 152-3] 사육신묘지공원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성삼문|하위지|박팽년|이개|유응부|유성원
크기(높이,너비,두께) 높이 215㎝|폭 80㎝|두께 41㎝
관리자 서울특별시 동작구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공원에 있는 사육신의 묘 앞에 건립된 신도비.

[개설]

사육신 신도비는 1782년(정조 6)에 사육신(死六臣)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신도비로, 비명은 태학사 조관빈(趙觀彬)[1691~1757]이 찬하고, 글씨는 당(唐)의 안진경(顏眞卿)의 글을 집자(集字)하여 새겼다.

[건립 경위]

사육신 묘역에는 본래 ‘박씨지묘(朴氏之墓)’·‘유씨지묘(兪氏之墓)’·‘성씨지묘(成氏之墓)’·‘이씨지묘(李氏之墓)’라 새긴 표석이 있는 묘 4개가 있어 민간에서 이 묘소를 사육신묘라 일컬었다. ‘박씨지묘’는 박팽년(朴彭年), ‘유씨지묘’는 유응부(兪應孚), ‘성씨지묘’는 성삼문(成三問), ‘이씨지묘’는 이개(李塏)의 묘로 추정해 민간에서만 인정되어 왔으나 숙종 대에 들어 사육신묘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 노량에서 열무(閱武)하던 차에 관리에게 명하여 사육신묘를 봉식(封植)하게 하고, 사육신을 숭장하기 위해 사당인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우고 사액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사육신묘가 사람들의 존숭을 받게 되었고,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위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의 사육신공원 홍살문 안쪽에 사육신의 사당인 의절사(義節祠)가 있고, 그 앞뜰에 신도비가 위치해 있다. 신도비는 본래 건립 당시에는 봉분 아래 큰길가에 세워져 있었으나, 1978년 사육신 묘역을 정비하면서 옮겨졌다.

[형태]

사육신 신도비의 높이는 215㎝, 폭은 80㎝, 두께는 41㎝이다. 네모진 대석(臺石)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 위에 옥개석을 얹은 형태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신도비의 양식이다.

[금석문]

사육신 신도비 좌측 상단에 ‘유명조선국육신묘비(有名朝鮮國六臣墓碑)’라 새겨져 있고 태학사 조관빈이 문장을 지은 사실과 당 안진경의 글씨를 집자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사육신이 절개를 지키고 사형을 당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황]

1978년 사육신공원이 조성되면서 사육신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해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육신에 대한 존숭 과정을 알 수 있는 문화재이다.

[참고문헌]
  • 『동작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1994)
  • 동작구청(https://www.dongjak.go.kr)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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