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15
한자 趙泰采
영어공식명칭 Jo Taechae
이칭/별칭 유량(幼亮),이우당(二憂堂),충익(忠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 조태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86년 - 조태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조태채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을 올림
활동 시기/일시 1694년 - 조태채 경상도 암행어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00년 - 조태채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02년 - 조태채 대사헌(大司憲)이 이어 도승지(都承旨)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03년 - 조태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06년 - 조태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12년 - 조태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13년 - 조태채 동지사(冬至使)로 북경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717년 - 조태채 우의정(右議政)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20년 - 조태채 사은사(謝恩使)로 북경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721년 - 조태채 진도에 유배
몰년 시기/일시 1722년연표보기 - 조태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25년 - 조태채 복작(復爵), 사충서원(四忠書院) 건립
추모 시기/일시 1725년 4월 - 조태채 ‘충익(忠翼)’이라는 시호가 내려짐
추모 시기/일시 1746년 - 조태채 영조의 명으로 치제(致祭)됨
추모 시기/일시 1756년 - 조태채 사충사(四忠祠) 개축과 치제(致祭)
부임|활동지 옥구현(沃溝縣) - 전라남도 군산시 옥구읍
부임|활동지 공주목(公州牧) - 충청남도 공주시
부임|활동지 평안감영(平安監營) - 북한 평양직할시
유배|이배지 진도(珍島)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묘소|단소 서천(舒川) 송곡(松谷)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사당|배향지 사충서원(四忠書院)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지도보기|경기 하남시 하남대로232번길 89-8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양주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있었던 사충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문신.

[개설]

조태채(趙泰采)[1660~1722]는 노론의 대신으로서 연잉군(延礽君)[영조]이 경종(景宗)의 왕세제로 책봉되도록 힘썼으나 이로 인해 신임사화(辛任士禍) 때 사사(賜死) 되었다. 영조 즉위 후 신원되어 현재의 동작구 지역에 위치했던 사충서원(四忠書院)에 배향되었다.

[가계]

조태채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증조부는 인조 대 호조참판 조존성(趙存性)이며, 조부는 현종 대 형조판서 조계원(趙啓遠)이고, 아버지는 괴산군수 조희석(趙禧錫)이다.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로 백홍일(白弘一)의 딸이다. 소론 대신(大臣)인 조태구(趙泰耉)와 조태억(趙泰億)과 사촌지간이다.

[활동 사항]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을 올리고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언관(言官)과 평안도관찰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703년(숙종 29)에는 호조판서로 발탁되었는데 5품관에서 판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6년에 불과했고 곧이어 국방의 요직인 수어사(守禦使)까지 겸직하게 되자 조태채의 빠른 승진에 대해 조야(朝野)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익살과 웃음이 많은 호탕한 성격 탓에 재상감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었으나 1717년(숙종 43)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허약하고 아들이 없던 경종이 즉위하자 1721년(경종 1) 노론의 대신들인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과 함께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도록 건의하여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를 경종에 대한 불충으로 규정한 소론의 공격을 받아 같은 해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학문과 저술]

조태채의 저술로는 『이우당집(二憂堂集)』 6권 3책이 있다. 조태채가 남긴 작품들을 영조 말년에 모아서 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문(詩文) 외에도 차(箚), 소(疏), 계사(啓辭), 수의(收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계사와 수의는 당시의 붕당 간 대립 양상과 각종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725년(영조 1) 충익(忠翼)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조태채·김창집·이이명·이건명을 배향하는 서원(書院)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인 노량진 사육신묘 입구에 세워졌으며, 이듬해 ‘사충’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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