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59 |
---|---|
한자 | 李範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우현 |
출생 시기/일시 | 1856년 5월 3일 - 이범윤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03년 8월 - 이범윤 북간도관리사로 파견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6월 - 이범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 총재 추대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이범윤 대한의군부 총재 추대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9월 - 이범윤 군사연합회의준비회를 회장 추대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3월 10일 - 이범윤 신민부 참의원장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10월 20일 - 이범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이범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출생지 | 이범윤 출생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55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신민부 참의원장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이범윤(李範允)[1856~1940]은 1902년 5월 북간도 시찰로 파견된 이후 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항일무장활동에 매진했다. 1911년 6월 권업회 총재, 1924년 9월 군사연합회의준비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가계]
이범윤의 본관은 전주이며 세종의 5남 광평대군을 중시조로 한 전주 이씨 18세손이다. 아버지는 이경하(李景夏)이며, 이위종(李瑋鍾)의 숙부이다.
[활동 사항]
이범윤은 1856년 고양군 숭인면[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태어났다. 1902년 5월 22일 북간도 시찰로 파견된 이후 1903년 8월 11일 북변간도관리사에 임명되어 간도에 거주하던 한국인 보호에 매진했다. 사포대(私砲隊)를 조직하고 병영을 설치해 간도 한국인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05년에는 러시아령 연해주로 근거지를 옮겨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연해주 한인 지도자였던 최재형과 연합해 의병부대를 편성했다.
이범윤은 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 총재로 추대되었다. 1914년 8월에는 1차세계대전 발발 이후 일본과 제휴한 러시아의 탄압을 피해 다시 북간도 지역으로 이동해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20년대에도 항일무장투쟁의 원로로서 1920년 대한의군부 총재, 1925년 3월 10일 신민부 참의원장 등 여러 독립군 단체의 단장, 의장직에 추대되었다.
이범윤은 1940년 10월 20일 사망했다.
[묘소]
이범윤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55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