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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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義俊 |
이칭/별칭 | 이병준(李秉俊),한웅권(韓雄權),한유권(韓有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우현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 이의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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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2년 8월 - 이의준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5월 19일 - 이의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총독 암살 시도 |
몰년 시기/일시 | 1929년 1월 25일 - 이의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이의준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출생지 | 이의준 출생지 - 평안북도 위원군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 72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의준(李義俊)[1893~1929]은 1893년 평안북도 위원군에서 출생했다. 1922년 김창균(金昌均)과 만주로 가서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에 임명되며 무장항일투쟁을 했다.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이병준(李秉俊), 한웅권(韓雄權), 한유권(韓有權) 등 다양한 가명을 사용했다. 1923년 4월에는 우편으로 운반 중인 일본돈 1,500엔을 빼앗아 군자금에 충당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평북경찰부 수사대와 만나 총격적을 벌였고, 8월 21일에는 강계(江界)경찰서 청풍(淸豊)주재소를 습격해 일본 경찰을 사살하고 방화했다.
이의준은 1924년 5월 19일 이춘화(李春和)·김창균(金昌均)·현성희(玄成熙)·이명근(李明根)·김여하(金呂河)·전창식(全昌植)·장창헌(張昌憲) 등과 국경순시차 압록강 중류를 지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의준은 1924년 7월 15일 밀정 한일룡(韓一龍), 24일에는 밀정 장득성(張得成)을 사살했다. 1926년 말 만주에서 체포되었고 1928년 11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1929년 1월 25일 사망했다.
[묘소]
이의준의 위패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 72에 봉안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