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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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載興 |
영어공식명칭 | Yu Jae Hu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실 |
[정의]
6·25전쟁 당시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서 벌어진 한강방어선 전투에 참전했던 군인.
[가계]
유재흥(劉載興)[1921~2011]은 1921년 8월 3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41년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고, 일본 패망 후 조선으로 돌아와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보급관이 되었다. 이후 제4여단장, 제6사단장, 제2사단장직을 맡았고, 제주 4·3사건 후반기 제주도지구 전투사령관으로 부임하여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는데 공헌하였다.
유재흥은 1950년 6월 10일 제7사단장에 임명되어 의정부 전선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다음날 의정부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전황의 악화로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유재흥은 한강 방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편성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사령관 김홍일] 하에서 새롭게 편성된 혼성제7사단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혼성제7사단은 동작동-대방동 정면을 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7개 대대 병력으로 노량진-영등포 간 강변지역과 동작동-노량진 간 고지대의 확보에 주력하였다. 한강선 방어전투는 7월 3일까지 진행되었고, 철수를 하던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7월 5일 수도사단과 제1사단, 제2사단을 중심으로 하여 제1군단을 창설하면서 군단장에 김홍일, 부군단장에 유재흥이 임명되었다.
1960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한 후 태국, 스웨덴, 이탈리아 대사 등을 역임하였고, 1971년에는 국방부장관직을 맡았다. 일본군 육군 장교로 복무한 이력으로 인하여 아버지 유승렬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묘소]
유재흥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은성태극무공훈장 등 무공훈장 5회, 수교훈장 2회 등을 국내외로부터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