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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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應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경호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11월 11일 - 임응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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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4년 - 임응식 일본도시마체신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74년 - 임응식 중앙대학교 사진과 교수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2001년 1월 8일 - 임응식 사망 |
출생지 | 임응식 출생지 - 부산광역시 |
성격 | 사진작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재직한 교수이자 사진작가.
[가계]
임응식(林應植)[1912~2001]은 1912년 11월 11일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휴전 이후 ‘구직’이란 스티커를 붙이고 명동 미도파백화점 건물에 기대서 있는 사진은 누구나 익숙할 것이다. 그 작품을 찍은 사람이 바로 임응식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근대를 장식한 여러 인물들의 사진이 바로 임응식의 손에서 나왔다. 여러 차례 국제 사진전에 나아가서 당선되었다.
임응식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초대학과장을 맡았으며, 서울대와 이화여자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사진을 강의하였고 사진학과 설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을 맡았다. 동아일보 1960년 3월 19일자에 따르면 세계사진연감에 임응식의 작품 ‘입모(笠帽)’가 수록되었다. 1961년 5월 18일자 동아일보 ‘현대사진예술의 경향-인간의식이 작품에 나타나야 한다’라고 하는 글에서 임응식은 “사진 역사가 짧아 일본의 아류에 불과했지만 6·25전쟁 이후 사진가들이 인간적으로 변해 종래의 살롱픽쳐가 없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인간적인 사진임을 밝혔다.
[저술 및 작품]
건축 사진집으로는 『비원』·『경복궁』·『종묘』·『소쇄원』[광장출판사]이 있으며 1979년에는 『임응식 사진집』[시각출판사]을 출판하였다. 1982년에는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풍모』[시각출판사]를 출판하였고, 『한국 현대창작사진 대표작가 12인 선집』-제1권 임응식[금성출판사]이 1992년 출판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임응식 사진집』[사진예술사]과 1998년에는 대담집 『사진가와의 대화 3』[눈빛출판사]를 출판하였으며, 1999년에는 회고록 『내가 걸어 온 한국사단』[눈빛출판사]을 출판하였다.
이밖에 「농가」[1932]·「초자의 정물」[1934]·「둑을 가다」[1935]·「범영루 판석」[1947]·「전쟁고아」·「초연 속의 성당」·「피난민 아이들」·「노점 수레」[1950]·「병아리」[1952]·「나목」·「구직」·「노파와 GI」[1953]·「산마을」·「명동 부감」·「작곡가 윤용하」·「시인 오상순」[1954]·「화극」·「청계천변」·「작곡가 안익태」[1955]·「초여름」[1956]·「입모」[1957]·「절규」[1960]·「서양화가 김환기」[1961]·「사당 앞 보도」[1966]·「뒷마루 밑」[1967]·「승방 창문」[1968]·「서양화가 장욱진」[1969]·「대연각 화재」[1971]·「가족」[1972]·「아동문학가 이원수」[1974]·「지붕과 담」[1977]·「시인 구상」[1979]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58년 한국사진문화상을 비롯하여 1960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았다. 1971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현대사진문화상을 받았다. 1989년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