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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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以生列修道院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방원일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었던 이스라엘수도원 소속 시설.
[개설]
김백문(金百文)[1917~1990]은 1945년 해방 직후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섭절리에 기독교계 신종교인 ‘야소교(耶蘇敎)이스라엘수도원’을 설립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추종자를 위한 정기적인 집회를 여는 서울 집회소가 상도동에 개설되었다.
[변천]
김백문은 김남조와 백남주 목사를 만나 종교적 감화를 받았고, 1940년에 조선신학원에 다니다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1943년 경에는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섭절리에서 기도 생활을 시작했고, 1945년 이스라엘수도원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동시에 서울 상도동에 집회소를 운영하였다. 6·25전쟁이 나자 김백문은 부산 동래로 피난 갔다가 1953년 11월 종로6가에서 ‘이스라엘자녀된 맹세’를 선포하며 수도원을 다시 열었다. 1959년 소재지를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으로 옮겼고, 1969년부터는 ‘기독교 청수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이스라엘수도원 서울집회소는 1945년 경부터 1950년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후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을 창시한 문선명[당시 이름 문용명]이 이곳에 출석하면서 김백문과 신학적으로 교류하였다. 문선명은 1938년부터 3년간 경성상공실무학교를 다니며 흑석동에 거주하였고, 일본에 다녀온 1943년부터 1946년까지도 흑석동에 거주했다. 문선명은 1945년 10월부터 1946년 4월까지 상도동의 집회소에 출석하며 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황]
김백문은 1990년에 사망하였다. 이스라엘수도원의 교인은 김백문 생전에는 30여 명을 유지하였고, 김백문의 사후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10여 명 규모로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