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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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龍 |
영어음역 | Jeon Yong |
이칭/별칭 | 여견(汝見),석천(石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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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559년 |
본관 | 정선(旌善) |
대표관직 | 형조판서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 정선전씨 안동파로, 아버지는 호조판서 전응조(全應祖)이며, 전용은 5명의 아들을 두었다.
[활동사항]
성품이 헌칠하고 우뚝하여 일찍이 궁마(弓馬)와 기예(技藝)를 익혔다. 임진왜란을 만나 사복시(司僕寺)에 속하여 임금·세자 등이 탄 말을 끌던 종7품 잡직인 견마배(牽馬陪)로 선조를 호위하며 뒤따랐다. 개성에서 어명으로 정예 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종묘의 위패를 호위하여 탈출하는데, 왜적 대병이 포위하여 왼쪽 뺨과 왼쪽 귀가 떨어지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임무를 완수하였다.
1593년에는 시위공(侍衛公)으로 수문장(守門將) 군직에 제수되어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로 벼슬이 올라갔으며, 1601년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에 임명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노은사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훈되어 석릉군(石陵君)에 봉군되었으며, 형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선암리에 영정각을 세웠고, 1936년에 의왕(義王) 이강(李堈)이 신도비명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