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2995 |
---|---|
한자 | 自然災害 |
영어공식명칭 | Jayeonjaehae|Natural Disaster |
이칭/별칭 | 천재지변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호민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천변지리(天變地異)로 인하여 발생하는 막대한 인명·재산 등의 피해.
[개설]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고도 한다. 자연재해는 기상·지변(地變)·생물 등에 급격히 나타난 자연 현상으로 인하여 입는 재난인데, 인간들에 의해 일어나는 인재(人災)와 크게 구별된다.
[종류]
보통 기상 현상에 의하여 발생하는 기상 재해가 가장 대표적인 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후 지역에 따라 그 피해의 차이가 대단히 크고, 재해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많은 기상 재해는 폭우해·홍수·장마·해일·가뭄·냉해·폭설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지진·화산 폭발·산사태 등의 지각 변동에 의한 자연재해가 있으며, 동물에 의한 병충해·전염병·풍토병 등의 생물 재해가 있다.
[근대 이전 재해]
조선 후기 강릉을 비롯한 영동 지방에서 발생한 기상 및 자연재해는 지역민들의 일상 생활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의 추진에도 많은 어려움을 야기시켰다.
1. 호우
1)1675년(숙종 1) 6월 14일 영동 지방에 큰물이 져서 민가가 표몰(漂沒)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2)1697년(숙종 23) 6월 25일의 장문에 의하면, 강원도에 장맛비가 한 달이 지나도록 계속 내려 날씨가 음산하고 차가우며 대관령 동쪽의 아홉 고을과 서쪽의 열한 고을이 모두 수재(水災)를 당하였다고 보고하였다.
3)1717년(숙종 43) 9월 2일 강원도 각 고을에 큰물이 져서 가사(家舍)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전복된 것이 328호이고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이 147명이고 승려들이 깔려서 죽은 것이 16명이었다.
4)1719년(숙종 45) 8월 13일 강원도에서 민가 1백 수십 호가 표몰되었다.
2. 태풍
1)1607년(선조 40) 강원도 영동의 각 읍은 풍수(風水)의 변고가 지난 을사년에 몹시 참혹했는데 금년의 수재는 전년에 비해 더욱 심할 뿐더러 모두가 7월 20일경에 발생하였다.
2)1711년(숙종 37) 7월 22일 강원도 영동·영서의 여러 읍 대풍우(大風雨)가 밤낮을 다하도록 내려서 평지가 바다를 이루고, 밭과 논이 다 모래와 자갈 땅이 되었으며, 관해(官廨)와 정대(亭臺)가 혹은 영원히 기지(基址)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표몰된 인가가 대략 1,500여 호에 달하고 빠져 죽은 인물이 290여 명이나 되었으니, 수백 년 동안에 있지 않았던 변(變)이었다.
3. 폭설
1)1722년(경종 2) 12월 28일 강원도에 세 차례나 큰 눈이 내려 고갯길이 막히고, 개천과 우물이 메말라서 백성이 모두 눈[雪]을 취하여 밥을 지었다.
4. 우박
1)1674년(숙종 즉위년) 9월 17일 : 원양도(原襄道)[조선 효종 때 강원도를 고쳐 부른 이름]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비둘기 알만 하여서 곡식을 해쳤다.
5. 해일
1)1702년(숙종 28) 11월 28일 강원도 영동 각 고을에 해일이 발생하여 표몰한 인가가 많았다.
6. 지진
1)1681년(숙종 7) 5월 11일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 신흥사(神興寺) 및 계조굴(繼祖窟)의 거암(巨巖)이 모두 붕괴[崩頹]되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頭陀山) 층암(層巖)은 예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삼척부 동쪽 능파대(凌波臺) 수중(水中)의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潮水)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步) 혹은 50, 60보 노출되었다. 평창·정선에도 또한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양양·삼척·울진·평해·정선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2)1681년(숙종 7) 11월 11일 강릉·삼척·울진·평해·양양 등 지역에 여러 날 계속하여 지진이 일어났다.
3)1683년(숙종 9) 1월 15일 강릉·삼척·평해·울진·평창 등지에서 지진이 있었으므로 해괴제(解怪祭)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근대 이후 재해]
근대 관측 이래부터 2017년 현재까지 전국 규모나 강릉지역에 국한된 기상 재해 중 악기상(惡氣象)에 의해 발생된 기상 재해는 다음과 같다.
1. 호우
집중 호우는 습윤한 저기압 또는 강우 전선이 어떤 지역을 통과할 때 나타나거나, 6월 말에서 7월 초에 우리나라 전역에 장마 전선이 걸쳐 있을 때 흔히 나타난다. 또한 태풍과 폭풍이 통과할 때도 호우가 흔히 동반된다. 강릉지역은 서쪽으로는 높은 산맥과 동쪽으로 동해를 접하고 있어 집중 호우 때 많은 강수량에 의한 하천수의 범람이 예상된다. 그러나 강릉시의 경우는 대관령으로부터 동쪽의 해안까지 거리가 짧기 때문에 계곡이 많은 내륙 지방에서처럼 집중 호우에 의한 하천수의 범람이 빈번하지 않다.
강릉지역에서 1955년 1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호우에 의해 재해가 초래된 경우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단, 집중 호우에 의한 피해 내역은 강릉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호우 지역의 전역에서 발생한 피해 상황을 나타낸다. 호우 재해가 발생한 경우는 여름철에 많으나 봄과 가을에도 호우에 의한 피해가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1일 최다 강우량이 100㎜ 이상의 사례만 기록하고자 한다.
1955년 8월 28~29일 122㎜[풍속 8.3㎧], 1956년 7월 14일 117㎜[풍속 4.2㎧], 1957년 7월 6일~8일 127.5㎜, 1960년 9월 18일 102.2㎜, 1965년 7월 16~17일 114.4㎜[풍속 4.7㎧], 1968년 10월 23~25일 137.6[풍속 11.7㎧], 1969년 7월 15일~17일 136.64㎜[풍속 8.0㎧], 1969년 7월 30~31일 136.6㎜, 1970년 7월 5일~6일 267㎜, 1970년 9월 17일 112.1㎜, 1972년 8월 18일~20일 206.5㎜, 1972년 9월 13일~14일 105.2㎜[풍속 9.3㎧], 1975년 9월 14일 118.7㎜[풍속 4.0㎧], 1975년 11월 14일 138.6㎜[풍속 12㎧], 1976년 8월 12일 110㎜[풍속 5.0㎧], 1978년 10월 27일 107.6㎜[풍속 7.7㎧]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근대 관측 이래 최근[2017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강릉지방의 일강수량 최다 기록은 2002년 8월 31일 870.5㎜이다. 이는 한반도의 모든 관측소에서 파악된 것 중 최대에 해당되는 수치로서, 이날에 내린 시간 당 강수량은 최대 100.5㎜에 이르렀다. 다음 순위로는 1921년 9월 24일 305㎜, 2006년 10월 23일 304㎜, 1936년 9월 27일 297.7㎜, 1990년 9월 11일 297.5㎜이다.
2. 태풍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하여 우리나라 부근을 통과하면서 많은 인명과 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기상 현상이다. 태풍은 일반적으로 많은 강우량을 동반하므로 태풍 자체의 강한 바람에 의해 파손된 것 외에 호우에 의해서도 가옥 침수 및 붕괴가 초래된다. 강릉지역에 재해를 발생시키는 태풍은 대부분이 우리나라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을 통과하여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피해를 야기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통과한 역대 태풍 중 강릉지방에 최대 피해를 안겨준 것은 2002년 태풍 루사이다. 태풍 루사는 강릉에서 무려 870.5㎜의 강수 집중률을 보였으며, 일 최대 순간 풍속은 56.7㎧였다. 루사가 통과한 이후 강릉지방은 홍수를 비롯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남대천과 경포천 유역 곳곳에 재해 방지 시설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3. 폭설
강릉지역에서의 폭설은 한반도 전체가 저기압 세력 하에 있고 습기가 황해(黃海)를 거쳐 영동 지역으로 유입할 때 발생하고, 겨울과 초봄에 습기가 많은 북동 기류가 동해 해상에서 영동 지역으로 유입하여 서쪽의 태백산맥에 의해 강제 상승하여 냉각함으로써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강릉지역에 1955년 1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나타난 50㎝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5년 2월 20일~21일 50.6㎝, 1956년 2월 27~29일 86.8㎝, 1962년 11월 19일 50㎝, 1966년 2월 21일~24일 72.5㎝, 1969년 1월 28~30일 75.3㎝, 1969년 2월 14일~17일 55.9㎝, 1969년 2월 19일~22일 109.7㎝, 1969년 3월 4일 74.6㎝, 1978년 1월 1일~5일 63.9㎝, 1978년 12월 19일~20일 94㎝이다. 또한 근대 관측 이래 최근[2017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강릉지방의 최심적설 최고 기록은 1990년 2월 1일 138.1㎝이며, 다음 순위로는 1923년 1월 27일 130.2㎝, 1990년 2월 2일 118.0㎝, 1990년 1월 31일 113.7㎝가 있다. 같은 기간 대관령의 최심적설 최고 기록은 1989년 2월 26일 188.8㎝이며, 그 다음으로 1989년 2월 25일 186.5㎝를 보인다. 대관령의 적설량은 국내 최고 기록을 보이는 울릉도 지방[1962년 1월 31일 293.6㎝]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4. 우박
우박은 작은 빙정으로 직경이 몇 ㎜의 작은 것부터 수 ㎝ 이상의 큰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 또는 눈이 될 빗방울[우적(雨滴)]이 갑작스런 기온 하강에 의하여 빙정으로 변하여 지상에 도달하게 되고, 이 우박에 의해 채소, 잎담배 등의 농작물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영동 내륙 지방, 특히 영월 지방에서는 우박의 빈번한 출현이 보고되고 있으나 강릉지역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1981~2010년 기간 동안 강릉지방의 연평균 우박 일수는 0.7일[우박이 나타난 일수는 총 4일]이다. 강릉지역에서의 우박에 의해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사례 중 1967년 6월 19일에 발생한 상황이 최대 규모이다.
5. 냉해
농작물의 성장기나 수확기에 갑작스런 기온 하강에 의해 농작물이 냉해를 입어 수확이 감소하는 경우가 가끔 나타난다. 강릉지역에서의 냉해에 의한 피해액 및 피해 범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8년 4월 14일에 때 아닌 눈으로 냉해를 입었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