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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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黨活動 |
영어의미역 | Political Party Activitie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인용,증보:심재홍 |
제정연도/일시 | 1949년 7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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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연도/일시 | 1955년 9월 1일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강릉대로 33[홍제동 1001] |
상위관서 | 강원도 의회 |
전화 | 033-640-4036~4045 |
홈페이지 | 강릉시 의회(http://www.gncl.go.kr)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개설]
정당은 일반적으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당은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결성된 정치적 단체이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학술적 및 종교적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한 이익집단과도 구별된다.
우리나라의 정당법에서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법상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이나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 또는 정책으로 이루어진 정강을 구비하지 않으면 정당으로 존립할 수 없다.
[강릉에서의 각 정당들의 활동사항]
1. 광복 후부터 제1공화국까지
광복직후 강원도 각 지역에서는 자치위원회 또는 치안대가 자율적으로 조직되어 행정 및 치안을 담당해 왔는데, 강릉에서도 유사한 성격의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강릉자치위원회에서는 박건원, 김원래, 최두집, 김진백, 정위교, 최돈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활동하였다. 강릉·원주·춘천을 비롯한 각 지방의 자치위원회 조직은 1945년 8월 17일 서울에서 여운형이 중심이 된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고 지방조직에 착수하자 대부분 이에 흡수되었다.
자치위원회는 군정에 의한 신탁통치가 UN에서 결의되자 이에 반대하여 다시 조직되었는데, 강원도 내 민족진영은 김우종을 중심으로 신탁통치반대 강원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후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조직으로 키워갔다. 강릉에서도 민족진영의 국민회를 중심으로 우익청년단체 및 강원도학련 등과 연대하여 반탁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강원도위원회는 중앙과의 연대를 통하여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선거 후에는 강원도 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부상하였는데, 강릉 지역에서는 심상준, 최돈연이, 주문진에서는 최현길이 위원회 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정당은 1948년 5·10총선거를 기점으로 대부분 태동하였고 정당의 고유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51년 12월 17일 이승만이 부산에서 자유당을 발족하였다. 자유당 강원도당은 1952년 6월 22일에 원주에서 결성되었으며, 창당이후 각종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1960년 3·15부정선거로 종말을 고하였다.
민주당은 1955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때 범야연합전선을 구축한 호헌동지회가 모체가 되고, 정통야당의 길을 걸어 온 민주국민당이 참여하여 1955년 서울에서 창당하였으나 강원도에서는 활동이 미약하다가, 1956년 말에서야 강원도의 20개 시·군 중 17개 시군의 핵심당부 조직을 완료하였다. 그 외 대표적인 정당으로 한국독립당, 대동청년단, 민족통일건국전선 등과 소규모 단체로서 대한노동총연맹, 대한부인회 등이 있었는데 강릉에서는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당의 원장길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의 박세동이 당선되었다.
2. 제2공화국
4·19로 자유당이 붕괴되고 정권을 장악한 민주당은 1960년 7월 29일 시행된 제5대 민의원선거에서 강원도 내 20개 선거구 중 13개 선거구에서 승리하였고, 강릉에서도 김명윤이 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 후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간의 갈등으로 민주당[신파]과 신민당[구파]로 양분되었다. 강원도 내에서도 1961년 2월 20일에 신민당 도당준비위원회를 만들고, 23일 도당결성대회를 열어 위원장 신인우와 부위원장 4인을 선출하였다. 이후 지구당 결성에 들어가 4월 15일 춘천시당을 결성하고, 타 시·군지부당 조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5·16군사쿠데타로 해산되었다.
3. 제3·4공화국
1963년 1월 정치활동의 재개와 더불어 군사정권세력이 중심이 된 민주공화당이 2월 5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2월 26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강원도에서는 1963년 1월 11일 조직결성을 합의하고, 1월 14일 발기인 대회를 갖고 초대 사무국장에 김우영을 선출하였으며, 1월 26일 도조지부장에 김용호를 비롯하여, 도 전역이 9개 선거구로 개편됨에 따라 각 지구별로 지구당 조직책이 임명되었다. 강릉·명주 지역은 3지구책으로 김진각이 임명되었다. 대의원 조직에는 각 지구별로 9명을 선정하였는데 강릉은 정정원이 맡았다.
당명이 민주공화당으로 확정되고 초대 도지부 및 지구위원장은 대의원 중 최고령자인 김주혁이, 부위원장은 최연소자인 천세범이 선출되고, 강릉·명주 지역은 김기권이 선출되었다. 1963년 8월 16일 도당 및 지구당 개편에서 강릉·명주에서는 최승원이 선출되었고, 1964년 12월 12일 개편에서는 최익규가 선출되었으며, 1967년 3월 12일에는 7대 국회의원 공천에서 최익규가 공천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8년 12월 20일 개편에서는 강원도 내의 모든 지구당 위원장을 현역의원으로 교체하였다. 1971년 2월 22일 8대 국회의원 공천에서는 최익규가 3지구에 공천되었다. 그러나 최익규가 4·27 대통령선거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5월초 최돈웅으로 공천이 교체되었다. 1972년 5월 12일에는 최돈웅이 만장일치로 3지구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공화당은 1973년 도지부기구를 없애고 도당무협의회를 4월 2일에 발족시켰다. 지구당도 재편하여 5개의 지구당을 두었는데, 3지구당은 김효영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였으며, 3지구 국회의원 공천에서는 김효영이 공천신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공천을 얻었다. 1975년 개편대회에서는 3지구당의 모든 책임자들이 유임되었으며, 1976년 4월 지구당 개편에서도 3지구 위원장으로 김효영이 재 선출되었다. 이후 지구당 개편에서도 3지구당은 김효영이 계속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민정당은 1962년 12월 22일 윤보선 전 대통령이 범야 대동단결을 제창한 것이 효시가 되어 1963년 1월 27일 서울에서 발족하였다. 강원도에서는 2월 6일에 황호연[무소속], 유기수[자유당], 신현일[신민당], 홍종남[민주당] 등이 정파를 대표한 조직위원으로 지방조직에 착수하여 강릉·명주에서는 권혁승을 선출하였다. 4월 30일 도지부 및 지구당 결성에서 도지부장 및 3지구 위원장으로 김명윤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도지부 결성 후 11월 26일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 한 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강릉 지역은 최근영이 출마했으나 민주당의 김삼에게 패하였다. 이후 민정당은 1964년 11월 26일에 자유민주당을 흡수·통합하였다.
자유민주당은 1963년 9월 3일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김준연을 대표최고위원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였다.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강릉에서 김삼이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민의 당’ 및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으나 제반조건이 여의치 않자 1964년 11월 26일 제1야당인 민정당에 흡수·통합되었다.
신정당은 1963년 3월 7일 가칭 ‘신정당’의 발기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4월 29일에는 창당준비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질적이고 잡다한 계보의 정치인들이 규합하였으므로 융화도 잘 되지 않는 등 내부적인 문제로 스스로 해체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정당은 정식 창당을 하지 못한 채, 민정당 일부 및 민우당 등과 통합하여 ‘국민의 당’을 창당하는 모체가 되었다.
국민의 당은 신정당·민우당의 2개 정당과 무소속 및 민주·민정당계의 일부가 통합하여 1963년 8월 1일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거쳐 9월 5일 창당되었다. 그러나 민정당과 구민주계의 이탈로 신정당의 변형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국민의 당은 제5대 대통령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모두 패배한 뒤 책임추궁을 둘러싸고 분열되었다가 1964년 9월 17일 민주당에 통합됨으로써 해산되었다.
민중당은 1965년 제1야당인 민정당과 제2야당인 민주당이 통합하여 창당하였으며, 제3공화국 출범 이후 최초의 통합야당이었다. 강원도 내에서의 지구당 결성은 강릉·명주[3지구당]에서 구 자유민주당 국회의원인 김삼 등 9개 지구에서 결성되었다. 그러나 민정·민주당계와 결별하고 1966년 3월 30일 신한당을 창당함으로써 야당 통합 5개월 만에 민중당은 다시 분당되었지만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대통령후보단일화와 야당통합 추진에 따라 1967년 2월 7일 민중당과 신한당이 합당, 신민당을 창당함으로써 전통적인 야당세력이 다시 통합되었다. 강원도 지구당 조직책 임명은 9개 전 지구에서 결성되었고 3지구인 강릉·명주에서는 김삼이 임명되었으며, 도지부위원장에는 2지구당 조직책 박영록을 임명하였다. 1967년 6월 8일의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9개의 지구 모두에서 공천했고, 3지구는 김삼이 공천되었다. 강원도 내에서는 2지구의 박영록만 당선되었다. 1968 5월 16일과 1969년 4월 30일의 지구당 및 도지부개편에서 박영록이 위원장으로 각각 선출되었으며, 3지구는 김삼이 재임명되었다. 신민당은 1969년 9월 7일에 3선 개헌안 부결을 위하여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자동 상실을 노리고 당 해체를 결의하였으나, 14일 만인 9월 20일 다시 창당절차를 밟음으로써 원상회복하였다.
1970년 7월 3일에는 박영록이 도지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3지구당 위원장에는 최용근이 선출되었다. 이후 1972년 4월 27일에는 홍창섭이 박영록을 누르고 도지부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3지구당은 최용근이 선출되었다. 1973년 신민당은 도지부체제는 유지하면서 지구당 구역을 재편성하였는데, 홍창섭이 탈당하면서 도지부위원장이 공석이 되었고, 3지구당은 1973년 6월 13일 위원장에 김명윤을 선출하였다. 2·27선거 이후에는 도지부는 조직되지 않았고, 4개 지구당만 당조직을 정비하였는데 3지구당[강릉·명주·삼척]은 위원장이 유임되었으며, 1976년의 지구당 개편에서도 김명윤이 유임되었다.
1977년에는 중앙당의 단일지도체제가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었고 박영록이 중앙당무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도지부는 결성되지 못한 채, 3지구당의 조직책은 그대로 유임되었다. 1979년 5월 30일 전당대회에서는 김영삼을 총재로 하는 단일지도체제로 바뀌었다. 강원도에서 지구당개편대회를 마쳤으나 원외지구당은 조직개편을 하지 못했는데, 강릉도 지구당이 조직되지 못하였다.
통일민주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신민당의 반유진산계(反柳珍山系)가 중심이 되어 1973년 1월 27일 창당하였으나, 1973년과 1978년의 국회의원선거에서 3명이 당선되었을 뿐이다. 강원도 내 지구당은 4개 지구가 결성되었는데, 3지구당의 경우 위원장에 지일웅이 추대되었다. 1974년 1월 22일에는 도당결성이 없는 상태에서 삼척의 김명하가 위원장에 추대되었다. 1978년의 제10대 총선에서는 도내의 8개 지구당 중 1, 2, 5지구당만 후보자를 냈으나 당선자는 없었다.
이 외 정치단체로 오월동지회 강원도지부가 1963년 7월 25일에 결성되었으며, 청우회 도지도부는 1963년 5월 28일에 결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4공화국 시기에 도당결성이 없이 지구당을 구성한 한국기민당은 1978년 11월 13일에 제3지구당을 결성하고 정인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4. 제5공화국
1980년 11월 28일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 민주정의당 발기선언이 있은 후 1981년 1월 7일까지 전국 77개 지구당 창당을 완료했다. 강원도에서는 이범준이 도당조직책으로 선임되어 6개 지구당 창당을 마쳤으며, 1981년 1월 30일에 도지부결성대회를 통해 이범준을 위원장에 선출하고 6개 지구의 지구당도 개편하였다. 당시 1지구 2인제 선거제도하에서 1981년 3월 25일 실시된 제11대 총선에서 공천후보 전원이 당선되었다. 1981년 7월 1일자로 선전부를 폐지하고, 도 및 지구당 요원 24명을 임명하였는데 4지구는 이범준이 임명되었다. 1983년 1월 21일부터 2월 5일까지 정기위원회를 열고 도내 현위원장을 모두 재선출하였는데 4지구당은 이범준이 선출되었다. 1983년의 2차 정기위원회에서는 강원도지부 위원장으로 심명보[6지구]를 선출하였다. 9월 23일에는 1차 분과위원회를 열고 17개 분과위원장을 선출하였는데 강릉 지역인사가 담당한 분과는 통일안보[김형준], 체육보건[이달영]이었다. 1985년 3월 14일에는 3차 정기대회를 열고 새 위원장에 김정남[3지구]을 선출하고 부위원장에 김형준[강릉] 등 10명을 선출하였다. 1986년에도 도지부위원장에 김정남이 재추대되고, 4지구당 위원장에는 이범준이 선출되었다. 1987년에는 도지부위원장이 김용대로 교체되고, 4지구당 위원장은 이범준이 재선임되었다.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변경되면서 민정당은 1988년 3월 29일부터 4월 1일 사이에 14개 지구당의 창당 및 임시대회를 개최했으며, 4·26총선에서 8명이 당선되었다. 3지구[강릉]의 이봉모는 최각규에게 패하였다. 7지구[명주·양양]에서는 김문기가 당선되었다. 1988년 7월부터 도지부는 지구당 조직개편에 나서 지구당위원장 일부가 교체되었는데 강릉은 최돈웅이 선출되었다.
민주한국당[민한당]은 1980년 12월 1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거쳐 1981년 1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창당 후 1981년 3월 25일 총선거에서 지역구 57명이 당선되었다. 강원도지부는 김준섭이 조직책을 맡아 도내 6개 지구당 조직을 마쳤다. 1982년 12월 23일부터 1983년 1월 15일까지 도내 6개 지구당 대의원회를 열었는데, 4지구당은 1월 12일 최선규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1983년 12월 23일부터 1984년 1월 15일까지의 도내 지구당 대의원대회에서는 당시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토록 하였다.
한국국민당은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유정회] 소속 10대 국회의원들 일부가 결속하여 1981년 1월 23일 창당대회를 열고 당명을 ‘한국국민당[국민당]’으로 결정하였다. 국민당은 3월 25일 제1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 18석, 전국구 7석, 도합 25석을 확보하여 제3당이 되었다. 강원도에서는 6개 지구 중 1지구와 4지구[강릉·명주·양양]에서 당선자를 냈다. 4지구는 이봉모가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1983년 1월 11일에 대의원대회를 치르고 이봉모가 위원장으로 재추대되었다. 그 후 1987년까지 이봉모가 위원장을 맡았다.
신한민주당은 1985년 1월 18일 구 신민당 인사들이 해금되면서 야권정치인들과 연합하여 창당되었다. 1985년 2월 12일 창당 후 처음으로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84석을 확보, 제1야당으로 부상하였다. 강원도 내에서는 1985년 1월 15일 신민당 강원제1지구 창당대회를 개최하여 위원장으로 김형준을 선출하였다. 4지구당위원장에는 김기현이 선출되었다. 강원도 내에서는 1987년 2·12총선에서 1명도 당선을 시키지 못했다.
신한민주당은 당고문 김영삼과 김대중이 1987년 4월 내각제를 전제로 한 ‘이민우 구상’에 반발, 소속의원 74명을 이끌고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이후 당세가 약화되다가 이민우의 정계은퇴와 함께 사실상 붕괴되었다. 통일민주당은 6월 항쟁에서의 주도적 역할로 6·29선언을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강원도 내에서는 1987년 12·26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이 노태우에게 30여만 표 차이로 2위에 그쳤고, 4·26총선에서는 14개 선거구 중 3명을 당선시켰다.
통일민주당은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통령후보가 되려는 양 김씨의 분열로 김대중이 그해 10월 29일 동교동계 의원들과 탈당하여 11월 12일 창당대회를 열고 출범하였다. 출범 후 치른 12·16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3위에 그쳤고, 4·26총선에서는 한 명도 당선을 시키지 못하였다.
신민주공화당은 민주공화당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1987년 10월 30일에 창당되었다. 창당대회 겸 대통령후보지명대회에서 김종필을 당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다.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8.1%의 득표율을 획득하여 4위를 기록하였다. 1988년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35석을 획득하였다. 강원도에서는 4·26총선에서 강릉 지역구에서 최각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5. 제6공화국
1988년 4월의 제13대 국회의원선거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자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여소야대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보수연합구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 국민의 의사와 배치되는 위로부터의 정계개편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90년 1월 22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거대보수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였다.
강원도 내에서는 1990년 3월 28일 원주지구당을 시작으로 지구당개편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명주·양양은 김문기가, 강릉은 최각규가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초대 도지부위원장에 김문기가 임명되었다. 총선 이후인 1992년 4월 15일에 정기대회를 갖고 김문기를 도지부위원장으로 재선출하였으며, 지구당 정기대회는 4월 9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려 현 위원장들이 재선출되었다. 또한 총선 후 무소속으로 강릉에서 당선된 최돈웅을 영입하였으며, 1992년 8월 21일 강릉시지구당개편대회를 갖고 최돈웅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1993년 5월 6일에는 유승규가 도지부운영위원의 만장일치로 도지부장에 취임했으며, 1994년 8월 29일 운영회의를 열고 정재철[속초·고성]을 도지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한편 민자당 강릉시지구당 정기대회가 1월 10일에 열렸는데, 최돈웅을 만장일치로 위원장에 재선출하였다.
한편, 1995년 11월과 12월에 두 전직 대통령 노태우와 전두환이 구속되면서 12월 6일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강원도 내에서 신한국당은 1996년 4월 총선에 출마할 후보들을 1월부터 확정하였는데, 강릉의 경우 지구당 임시대회가 2월 14일에 열려 최중규를 새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신한국당 강원도지부는 1996년 7월 13일 도지부회의실에서 1996년 제2차 운영위원회를 열어 제2대 도지부위원장으로 내정된 박우병[태백·정선] 의원을 만장일치로 새 위원장에 선출했다. 1996년 8월 14일에는 당무위원회를 열어 강릉의 지구당 새 조직책으로 민주당에서 탈당한 최욱철을 임명하였다. 1997년 1월 15일에는 당무회의를 열어 황학수를 강릉갑 지구당 조직책에 임명하는 등 10개의 사고궐위지구당 신임조직책을 확정했다. 뒤이어 2월 14일에 강릉갑 지구당 임시개편대회가 열려 황학수를 새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이 무렵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가 탈당하여 국민신당을 결성하자 1997년 11월에 민주당과 통합하여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꾸어 대통령 선거전에 나섰으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에게 패배하였다. 뒤이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치른 2002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였다.
강원도 내에서는 한나라당 강원도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이 1997년 11월 24일 춘천 베어스타운호텔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최각규 지사를 비롯한 강원도 내 광역 및 기초단체장 6명이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선복기[강릉]를 비롯한 도의원 7명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은 1998년 2월 11일 강원도 내 지구당 조직책을 확정하였는데, 강릉갑은 황학수가, 강릉을은 최욱철이 임명되었다. 뒤이어 한나라당 강원도지부는 1998년 2월 14일 조직책이 선정된 도내 11개 지구당의 개편대회를 확정하였는데, 강릉갑은 2월 19일, 강릉을은 2월 16일로 정해졌다. 한나라당 강릉을지구당은 7·21 강릉을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7월 3일 임시대회를 열어 조순 총재를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한나라당 홍헌표 중앙상무위원 등 당원 15명이 1998년 7월 18일 강릉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한나라당 강릉갑지구당·한나라당 강릉을지구당 당원 1,540명이 탈당하여, 무소속 최각규 후보를 지원키로 했다고 선언했다. 또한 황학수 강릉갑국회의원이 1998년 11월 16일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17일 국민회의에 입당한다고 발표했다.
2000년 들어 한나라당은 강원도지구당개편대회가 각 지구당별로 3월에 개최되어 각지구당 위원장들을 선출하였는데, 강릉시는 최돈웅이 선출되었다. 최돈웅은 뒤이은 4·13총선에서 당선된다. 2002년 10월 23일에는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한나라당 강원도선거대책위 발대식 및 중앙현지연수대회를 가지고 본격적인 대선활동에 들어갔다. 강릉에서는 2004년 4·15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심재엽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평민당은 1991년 4월 신민주연합당[신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9월 10일 민주당 잔류파인 이기택과 재야입당파인 이부영 등의 민주당과 합당하여 ‘민주당’을 출범시키고 해체되었다. 1995년 12월 21일에는 개혁신당과 함께 민주당으로 신설·합당하였으며, 1997년 11월 24일에 신한국당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합당하였다.
강릉 지역에서의 민주당의 활동은 1993년 2월 6일 열린 명주·양양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최욱철이 재선되었으며, 강릉시지구당은 2월 10일 지구당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위원장에 함영회를 재선출하였다. 1996년 들어 총선을 대비한 강릉갑지구당 개편대회와 강릉을지구당 대의원대회가 1996년 3월 8일에 각각 개최되어 함영회와 최욱철을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뒤이어 민주당 강원도지부는 1996년 3월 25일 춘천에서 강원도선거대책위원회[위원장 최욱철]를 출범시키고 공약을 제시하였다. 최욱철 의원[강릉을]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선거직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자민련은 민주자유당의 공화계 세력들을 중심으로 1995년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였다. 5월 31일에는 신민당과 합당하여 6월 27일의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휩쓸고 강원도에서 도지사를 당선시켰다.
강원도 내에서 자민련은 1996년 2월 3일 강릉갑지구당 창당대회에서 황학수를 만장일치로 지구당위원장에 선출했다. 1996년 3월 24일에는 강릉을지구당 개편대회를 열고 김문기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1996년 총선에서는 황학수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1996년 총선이후인 12월 19일 자민련 소속의 최각규 지사와 류종수[춘천을], 황학수[강릉갑] 등이 자민련을 탈당했다. 그 뒤를 이어 강원도 내 자민련 소속 단체장과 도의원들이 무더기 탈당하였다. 탈당으로 공석이 된 강원도지부 위원장직을 한호선이 대행하게 된다. 자민련은 2000년 3월 18일 강릉지구당 개편대회를 개최하여 노승현을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2001년 9월 26일 강릉지구당 개편대회에서는 김원덕이 지구당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1995년 9월 5일, 김대중의 주도 아래 창당한 정당으로 창당과 동시에 원내 의석 53석을 차지해 제1야당이 되었다.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40.3%의 득표율로 당선됨으로써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고,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면서 여당이 되었다.
강원도 내에서는 1996년 2월 23일 국민회의 강릉갑지구당과 국민회의 강릉을지구당의 창당대회가 열려 강릉갑지구당위원장에 김진하를, 강릉을지구당위원장에 이참수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뒤이어 1996년 3월 22일 춘천 세종호텔에서 제15대 총선 강원지역 공약발표회를 갖고, 이참수 부총재를 도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도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러나 총선에서 만족스런 결과는 얻지 못하였다. 1996년 9월 11일에는 강원도지부 결성식을 갖고 도지부장에 이참수 강릉을지구당위원장 겸 부총재를 선출하였다. 3달 후인 12월 10일 강릉갑지구당개편대회를 열어 공석중인 위원장에 노승현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1998년 11월 17일에는 현역 의원들이 신임 조직책으로 임명된 도내 4개 지구당의 창당개편대회가 있었는데, 강릉갑지구당[조직책: 황학수]은 11월 27일에 개최되었다.
그 후 ‘개혁정당’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한다는 차원에서 2000년 1월 20일, 새천년민주당으로 정당 명칭을 바꾸었다.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이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과 함께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되어 야당으로 밀려났다. 2004년 4월 15일 총선에서 의석 9석으로 제4당으로 밀려났다.
새천년민주당으로 출범한 후 강원도 내에서는 2000년 7월 22일 도지부개편대회를 열고 송훈석을 도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2001년 10월 10일에는 강릉문화예술회관에서 지구당 개편대회를 열고 김문기 지구당위원장의 10·25 보궐선거 승리를 다짐하는 출정식을 가졌다. 2002년 2월 18일의 대의원대회에서도 김문기가 지구당위원장으로 재선출되었다. 민주당 강릉시지구당[위원장: 김문기]은 2002년 4월 1일 지구당사무실에서 상무위원회를 열고 김문기 위원장을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고 11명의 위원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김문기는 2002년 10월 15일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민주당 강원도선거대책본부는 2002년 11월 17일 공식 출범했다. 이에 앞서 15일에 춘천시지구당 선대위원장에 변지량, 강릉시지구당 선대위원장에 선복기, 홍천·횡성지구당 선대위원장에 지찬호 등을 각각 임명했다.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에서 분당하여 2003년 11월 1일 창당한 정당으로 2004년 현재 여당이다. 강원도 내에서는 2003년 11월 16일 춘천에서 도지부 창당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강릉시지구당 창당대회는 12월 27일 개최되었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30일 자본주의 사회의 질곡을 극복하고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 하에 창립되었는데, 강원도 내에서는 2002년 5월 11일 춘천시민회관에서 강원도지부 출범식을 가지고 김진주 동해·삼척지구당 위원장을 도지부장으로 선출하였다. 2004년 9월 25일에는 투표를 통해 민주노동당 강원도당 위원장에 길기수 춘천시지구당위원장이 당선되었다. 이 외에도 국민통합21 강릉시지구당은 2002년 11월 1일 강릉시지구당 창당대회를 열고 최욱철을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의 정당정치는 또 다시 급격한 변화에 처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동안 통합진보당이 간첩사건에 의해 해체되고, 열린우리당이 통합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과 조직이 변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일부가 분리하여 국민의당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한나라당에 이은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대통령선거 과정 속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으로 분리되었다.
강원도의 경우, 새누리당 강원도당위원장 선출 결과를 보면, 2013년 6월에 정문헌 의원 선출, 2014년 6월 염동열 의원 선출, 2015년 7월 김기선 의원이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되는 등 매우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리된 후에 2017년 7월 현재 자유한국당 강원도당위원장은 김진태이다. 바른정당 강원도당위원장으로는 2017년 1월 창당 직후 권성동, 황영철 공동위원장이 선출되었으나, 이후 권성동 의원장은 자유한국당으로 다시 당적을 옮겼다.
2017년 7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강원도당위원장은 심기준이며, 국민의당의 강원도당위원장은 조성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