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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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鹽倉- |
영어공식명칭 | Yeomchangnaru Ferr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전구간 | 염창나루 - 경기도 가평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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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경유 구간 | 염창나루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 |
성격 | 나루터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 염창마을에 있던 나루터.
[개설]
염창나루는 조선시대 이화리 마을 동쪽으로 흐르는 북한강 가에 있던 포구로, 달전리에서 장승고개 너머에 있는 첫 번째 마을에 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목재 등의 임산물이나 농산물을 실은 뗏목과 배들이 정박했다. 양지말 북쪽에 있고, 맞은편에는 남이섬이 있다.
[명칭 유래]
염창나루는 조선시대 가평군 관아에 공급되었던 소금을 저장하는 창고인 염창(鹽倉)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 영조 때까지 ‘영골’로 불렸는데, 이름이 격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배곳이’의 ‘배’ 자를 ‘이(梨)’ 자로 바꾸고 ‘곳’을 ‘꽃 화(花)’로 하여 이화리로 불렀다고 한다.
‘배곶’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이곳의 강어귀가 배 대기에 알맞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배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화리(梨花里)로 불렸다고 한다. ‘배곳’, ‘배곶’, ‘이화’는 모두 나루터와 관련한 지명에서 유래하거나 확장된 것이다.
일설에는 풍수지리적으로 이곳의 지형이 배꽃이 날리는 형국으로 그곳을 찾아 묘를 쓰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다는 설에 따라 ‘이화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현황]
1871년(고종 8) 편찬된 『가평군읍지』에서는 이화리의 호수(戶數)를 61호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육로 등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