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기숲과 용소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22
한자 - 龍沼 傳說
영어공식명칭 Haenggi Forest and Yongso Legend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원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0년 5월 27일 - 행기숲과 용소 전설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행기숲과 용소 전설, 『거창군사』에 수록
관련 지명 용암정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지도보기
채록지 치내 마을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치내 마을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서동|선화 공주|이무기
모티프 유형 지명 설화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있는 행기숲과 그 아래로 흐르는 용소에 얽힌 이야기.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있는 용암정 일원행기숲은 「서동요」와 연관 있는 곳이다. 백제 무왕(武王)이 왕자였을 당시 선화 공주와 백제로 넘어오다 행기숲 경관이 너무 좋아 며칠 머물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선화 공주가 이곳 냇가에서 목욕을 하다 손에 낀 가락지를 잃어버렸다고도 한다. 숲의 또 다른 명칭인 해인정(解印亭)은 신라 사신이 후백제의 구원을 청하러 가던 중 신라가 태조 왕건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신표 인장(信標印章)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행기숲 아래로 소(沼)가 있다. 옛날 이 소에서 두 마리의 이무기가 3,000년의 공을 들인 끝에 하늘로 승천하는데, 한 마리는 승천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사람의 눈에 띄어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이곳을 ‘용소’ 또는 ‘용포’라 부르고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0년 5월 27일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치내 마을 주민 임봉악[남, 54세]으로부터 채록하였다. 1997년 거창군사 편찬 위원회의 『거창군사』에 수록하였다.

[내용]

갈계리 치내 마을에서 약 50m 정도 수승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갈천위천으로 흘러가는 냇가 가운데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이 하나 있다. 이곳을 행기숲이라 하는데, 이 숲은 냇가 가운데 섬을 이루고 있어 양옆으로 냇물이 흘러간다. 행기숲 바로 아래 지금은 크게 깊지는 않으나 큰 소(沼)가 하나 있는데, 이 소를 용포라고 한다. 소나무 숲과 맑은 냇물, 넓고 큰 소가 있으므로 주변의 지세와 더불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행기숲은 서동요와 연관이 있는 곳이다. 백제 무왕[서동]이 왕자였을 당시 신라의 정황을 살피기 위해 신라에 가서 「서동요」를 퍼뜨렸다. 그리하여 선화 공주를 아내로 취하여 백제로 넘어올 때 행기숲 일대의 경치가 너무 좋아 며칠을 머물다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선화 공주가 이곳 냇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손에 낀 가락지를 잃어버렸다고도 한다. 이 숲의 또 다른 명칭인 해인정은 신라 사신이 후백제의 구원을 청하러 가던 중 신라가 태조 왕건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왕의 사신임을 입증하는 신표 인장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행기숲 바로 아래 잇대어 있는 소를 ‘용소’ 또는 ‘용포’라고 하는데, 옛날 이 소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한다. 원래 이무기는 돌담에서 천 년, 흙에서 천 년, 물에서 천 년을 숨어 살면서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아야 등천하여 비로소 용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용포에는 돌담에서 천 년, 흙에서도 천 년을 산 이무기가 마지막 천 년의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이 마을 사람이 아랫마을에 볼일이 있어서 가다 이무기가 소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는 이미 등천했고, 나머지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이 사람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3,000년의 공이 일순간에 무너지자 하늘로 오르던 이무기는 처절한 울음소리를 남긴 채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무기를 본 사람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고 하는데,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용소’ 또는 ‘용포’라고 부르고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가야권에 속했던 거창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지역 특성상 두 세력권이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기숲서동이 머물러 갔다든지, 선화 공주가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하나의 통과 제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용소는 '속(俗)'으로부터 '성(聖)'으로, 기존 질서에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입사식의 공간으로 이곳 사람들이 신성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거창군사 편찬 위원회, 『거창군사』(거창군, 1997)
  • 멀치아 엘리아데, 『우주와 역사』(현대 사상사, 2006)
  • 인터뷰(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주민 임봉악, 남, 54세, 1980.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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