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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045
한자 口碑傳承
영어의미역 Oral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집필자 김승대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개설]

구비전승은 크게 문학적 성격을 지닌 구비문학과 비문학적 성격의 말로 된 생활 기술 지식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구비전승 하면 떠오르는 구비문학의 경우 전설·신화·민담 등 문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설화와 노동요·만가·타령 등 노래의 형식을 빌린 민요[口傳歌謠], 그밖에 수수께끼·속담 등으로 나뉜다.

[김제의 설화]

설화는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단순한 거짓말과는 구별된다. 꾸며진 사건 자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움을 주지만, 이야기 속의 숨은 뜻은 이야기에 참여하는 화자와 청자 모두를 일상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이야기하기는 일상생활과 현실을 보다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인식시키는 문화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이야기나 현재적 사실을 말하는 것은 설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설화의 특징은 구비전승이란 점에 있다. 설화는 일반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구전되는 것으로서 소설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설화는 단순하고 간편한 표현 형식을 가지며, 소설과 같은 복잡한 구조나 상세한 묘사는 없다. 또한 설화는 산문을 취하기 때문에 율격을 가지지 않는 문체상의 특징을 보인다.

설화의 구연상의 특징은 구연 기회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나 화자와 청자 간에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만 이루어지면 설화는 구연된다. 그러나 상대가 없으면 설화는 구연되지 않는다. 설화는 반드시 상대를 의식하고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며 구연되는 특징이 있다.

설화는 구전상 항상 유동적이며 현재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구전되는 과정에서 기록되기도 하는데, 이때 기록된 자료를 문헌설화라고 하며, 이에 대해 현재 구승되는 자료를 구전설화라고 한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설화의 기록은 새로운 양상을 띤다. 설화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기록자의 의도가 들어가게 마련인데, 이 창의성이 보다 적극성을 가지면 기록된 설화는 곧 소설로 변환된다.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인간은 설화와 함께 존재해 왔다. 삶의 체험에서 얻어진 다양한 인식 내용을 일정한 구조 속에 형상화한 설화는 향유하는 이들의 삶의 양식과 내용적 실체를 구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무문자(無文字) 사회에서 설화는 오락적 측면과 집단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지식 체계를 전수하는 교육적인 기능을 아울러 지녔다.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설화를 통해 선인들의 정신세계의 깊숙한 층위를 구명할 수 있는 것도 설화가 갖는 문화적 의의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김제에는 지명유래 전설이 많으며, 특히 벽골제(碧骨堤)와 관련된 전설이 유명하다. 「조연벽과 벽골룡」은 「쌍룡추와 벽골룡」전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璧)과 관련된 것이다.

원평천의 포교(浦橋) 근처에 있는 초혜산(草鞋山) 북단의 용추(龍湫)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連浦川) 앞 용골마을 남단의 용추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다. 조연벽이 어렸을 때 꿈에 백의노인이 찾아와 자기는 벽골대제를 수호하는 백룡인데, 외지의 흑룡이 습격해 자기 집을 빼앗으려 하니 구원해 달라고 하였다. 이튿날 백룡이 흑룡과 싸울 때 조연벽이 활을 쏘아 흑룡을 죽였다. 그러자 백룡은 조연벽의 후손을 대대로 흥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보은으로 조연벽의 이름은 세상에 크게 드러났으며, 그 자손도 번창했다는 것이다.

「부잣집 손부(孫婦)와 이랴 소리」김제시 청하면 장산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마을에 천석꾼 김씨가 손부와 함께 살았는데, 이 손부가 기운이 무척 세어 여장군으로 소문이 났다. 이를 조정에서 알고 손부를 죽일까 두려워한 김부자는 손부를 야반도주하게 하였다. 손부는 많은 의복과 곡식을 소의 등에 싣고 떠났는데, 소가 청하산 고갯길을 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에 끙끙대는 소를 짐을 실은 채로 번쩍 들어 자기 머리에 이고 걸어가자, 머리 위에서 배가 눌린 소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손부는 소가 지칠 때마다 머리에 이고 갔는데, 소가 더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소가 지칠 때마다 “이랴, 이랴.” 하고 다그치며 고개를 넘었다. 그 뒤로 ‘이랴’가 소를 다그쳐 몰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승려와 아름다운 여인이 혼인하여 불도에 정진했다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묘화부인(妙花夫人)」, 부안군의 형제산이 풍랑으로 떠다니다 김제에 정착해 울었다고 해서 ‘울엉산’이라고도 하는 「울다지친 명량산」, 그리고 「입석산과 와석산 싸움」, 「구렁이와 흥복사」 등의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김제의 구전민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가요를 기능상으로 나누면 노동요, 의식요(儀式謠), 유희요 등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노동요는 농사일이나 어로 작업에서 일의 리듬에 따라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움으로써, 단합된 동작으로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의식요는 통과 의례(通過儀禮)에 따라 부르는 소리로 개인적인 축원과 공동체적인 기원을 담고 있으며, 이는 다시 세시의식요·장례의식요·일반신앙의식요 등으로 분류된다. 놀이와 더불어 그 진행을 돕거나 혹은 흥을 더하기 위하여 부르는 유희요는 놀이의 방식과 그 목적에 따라 경합유희요·언어유희요·가창유희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김제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많은데, 평야 지대이므로 농업노동요인 들노래가 중심이 된다. 들노래의 전승 상태가 좋은 곳은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이다. 모를 내기 전에 논 고르기에서부터 벼를 베어 내기까지 전 과정의 노래가 잘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 노래」는 “패랭이 꼭지에다/ 장화를 꽂고서/ 마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 여-이여-어여허-여루우/ 상-사아 뒤-이여…….”라고 하여 후렴이 ‘상사디어’계이면서 앞뒤 여음이 풍부하고, 느린 가락·빠른 가락이 모두 들어 있다.

「논매기 노래」는 “…… 바람 불고 눈비 올 줄 알면/ 어느 뉘가 빨래질을 갈까/ 나아-하아 하아-헤-/ 헤-헤어헤 에에헤에 헤헤헤/ 노호오오리 헤-에이 허-허리가/ 산아지로 고으나 에헤에에야…….”로 후렴이 「만경산 타령」과 비슷하고, 풍부하면서도 세련되어 있다.

「벼베기 노래」도 어느 지역보다 가락이 세련되었다. 「등짐 노래」라고도 하는 벼를 져내는 노래도 “오오-허어-오/ 어허-어허-오호호/ 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싣고서/ 이 고개를 어이 넘어갈거나…….”라고 하여 노동의 힘듦을 내용으로 하면서도 여음이 풍부하다.

「등짐 노래」·「김매는 노래」 등은 앞소리·뒷소리의 교환창으로 부르는데, 받는 소리는 “아허허 허아하 에헤-에하-”, “아헤-에 에헤야 에헤오호” 등 모두 다양한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부한 가락으로 부른다.

그 밖에도 「메물 노래」·「지층개 노래」·「나물 노래」·「담배 노래」 등이 있는데, “담장안에 담뱃모를 붓어서/ 낮이로는 볕내쐬고/ 밤으로는 이슬맞어/ 점점이 자라나니…….”의 「담배 노래」는 농사를 짓는 모습,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 “신통방통 고부랑통/ 인천 소금통/ 서울 오줌통/ 일본놈 장통/ 서양놈 우유통…….” 등 어희요 계통의 풍소요(諷笑謠)가 많으며, 「꼬리따기」·「다리빼기 노래」 등의 동요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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