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통신 시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경우, 봉수대는 고창현[현 고창읍]과 흥덕현[현 흥덕면]에는 없었고, 무장현[현 무장면]에만 두 곳이 설치되었다. 그 이유는 무장현이 바닷가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무장현 봉수조를 보면 “고리포봉수재현서이십리남응영광군홍농산북응소응포(古里浦烽燧在縣西二十里南應靈光郡弘農山...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와 성송면 무송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와 경계를 이루는 백제 시대 석성.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일원은 백제 시대 송미지현[현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 일원]에 속하다가 무송현으로 개칭되었고, 1417년(태종 17) 무송현이 장사현과 병합하면서 무장현이 되었다. 고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 고적조에 “...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축조를 위한 채석장. 고창 고인돌군은 성틀봉과 중봉을 중심으로 한 남사면에 주로 축조되었으며, 파괴된 고인돌 덮개돌 등을 포함하면 약 50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지역으로,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다수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하서는 그에 걸맞는 덮개돌 등을 채굴했던 채굴지가 있게 마련인데, 성...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축 읍성 및 관아 건물. 1991년 2월 26일 사적 346호로 지정된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쳐 그 중간 지점에 무장현을 두고 축조한 건물이다. 남문과 동문 등 2개의 성문이 있었으며, 그중 남문인 진무루(鎭茂樓)는 복원되어 있다. 성내에는 취백당(翠白堂)의 동헌과 송사지관(松沙之館...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저수지. 우리나라는 몬순 지대이기 때문에 수량이 풍부하여 벼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였다. 예부터 냇가나 계곡에 방죽을 쌓아 물을 충분히 가둬두고 이를 제언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언은 330년(흘해왕 21)에 축조된 벽골제이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1782년(정조 6)에 조사한 전국 제언의 수는 총 3,378개였다. 1778년(정조...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맹단. 남당 회맹단은 혈맹단이라고도 하며, 채홍국(蔡弘國) 등 고창 지역 300여 명의 선비들이 구국의 기치로 호남 의병을 창의하고자 삽혈 동맹을 하고 쌓은 맹단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이 격문을 돌려 창의(倡義)하여 92명의 의사(義士)와 50...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하갑리, 상갑리와 경계를 이루는 성틀봉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서산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서산고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고창 고적조에 “서산고성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는데, 곧 회시산의 남쪽 자락이다. 산허리에...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통신 시설. 소응포 봉수는 무장동헌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상하면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해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국가가 위급 사항에 처했을 때 이를 다른 지역에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소응포 봉수는 해리면 금평마을에서 남서쪽으로 올라가는 낮은 산[높이 122m]에 있다. 지금의 해리면 동호리 솔개[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신대리와 무장면 신촌리에 걸쳐 있는 개항기 동학 농민군의 숙영지.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3월 초에 해산하였으나, 고부 봉기의 조사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여 전봉준(全琫準) 등은 3월 20일경 무장에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들을 모아 「무장포고문」을 발표하고 재봉기하였다. 이때 고부·태인·부안 등지를 점령한 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흥덕면은 본래 백제 상칠현이었는데, 상칠현의 치소지가 흥덕면 오호리 오태동에 있는 오태리 고성으로 보인다. 상칠현은 신라 경덕왕이 상질이라 하여 고부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후에 장덕현으로 고쳤으나 충선왕이 1308년(충선왕 1) 즉위하자 창덕으로 고쳤고, 다시 창왕 때에는 창왕과 이름이 같아 흥덕으로 고쳤다. 오태리 고성에 대...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 있는 6·25전쟁 때의 양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6·25양민희생자위령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빨치산으로 몰려 무고하게 희생당한 선산마을 주민 510명의 영혼을 위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위 ‘고창 11사단 사건’으로 불리는 고창 양민 집단 희생 사건은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던 국군 11사단이...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우물. 조선시대 인물 감천 오준(吳浚)[1444-1494]의 효가 지극하여 유림들이 추모하는 의미에서 우물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효감천이다. 또한 유림들은 사당을 짓고 사당 명칭을 의논하던 중에 벌레가 대나무 잎에 ‘창효(彰孝)’라는 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보고 창효사(彰孝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효감천은 1980년 3월 8일에...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 갈공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당간 지주. 흥덕당간지주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민에 의하여 일곱 조각으로 절단되었던 것을 1983년 12월경에 수습, 복원하여 다시 세워놓았다고 한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흥덕당간지주의 위치와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향교와 함께 교운마을 일대에 사찰이 있었던 것...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축 읍성. 흥덕읍성은 조선 전기에 축조된 읍성으로 추정되는데, 1450년(문종 즉위년)에 전라도 지역의 읍성 정비를 위한 차원에서 실태 파악을 한 결과 개축 대상으로 분류된다. 흥덕읍성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에 따르면 “흥덕현의 읍성은 석성이며 규모는 295보”라 기록되어 있는데, 1477년(성종 8)에 완공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