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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에 있는 개항기 김녕김씨 가문의 정려 비각. 김세웅(金世雄)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김경우(金景佑)를 따라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창의하여 의주에서 적 10급(級)을 베고 전사함에 따라 조정은 김세웅에게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를 증직하였다. 김세웅의 처 청주한씨(淸州韓氏)는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한임여(韓霖汝)의 딸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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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에 있는 현대의 효열녀 창녕조씨 정려 비각. 창녕조씨(昌寧曺氏)는 직제학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인 조영환(曺永煥)의 딸이다. 창녕조씨는 청도김씨 김도일(金道一)에게 시집와 삼종지도를 깨달아 시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 받들기를 손님같이 했다. 나이 20세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지성으로 공궤하고 정화수를 길어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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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낙양리에 있는 개항기 무송유씨 가문의 정려각. 무송유씨(茂松庾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표가 내려져, 합동으로 무송유씨 삼강문을 건립하였다. 충신인 유영룡(庾泳龍)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이끌고 근왕(勤王)하다가 청주에 이르러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왔다. 유영룡이 죽은 후에 조정은 통훈대부 사헌부감찰(贈通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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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명철(吳命喆) 처 삭녕최씨(朔寧崔氏)의 정려. 오명철(吳命喆)의 처 삭녕최씨(朔寧崔氏)는 덕행이 정숙하였다. 회임하여 만삭일 때 남편이 죽자 자진하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만류하여 한 달이 지나 해산하고 곡기를 끊은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예조에서 정려의 명을 내렸다. 고창군 아산면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지방도 15호선을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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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이화 처 완산이씨의 정려. 오이화(吳以和)의 처 완산이씨는 이운령(李雲翎)의 딸로서 1614년(광해군 6)에 출생하였다. 남편 상을 당해 두 번이나 죽으려고 했으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소생하였다. 노모와 어린아이를 위해서 억지로 일어나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복을 벗은 뒤 친정아버지가 의지할 곳 없는 딸을 데려갔는데,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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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경복(柳慶福)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정려각. 1786년(정조 10) 고흥유씨인 유경복(柳慶福)의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열행으로 정려되었다. 울산김씨는 어려서 부친을 여읜 뒤 편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행하였고 형제간에 우애도 돈독하였다.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이 큰 병에 걸리자 주야로 시탕(侍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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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응두의 처 문화유씨의 정려. 직산 조응두(趙應斗)의 처 문화유씨는 사용(司勇) 유대기(柳大器)의 딸이다. 정유재란에 부부가 함께 산곡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왜적에 쫓겨 달아나자 문화유씨가 그 뒤를 따르다가 왜적에게 붙잡혔다. 왜적이 문화유씨를 겁탈하려 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끝내 절사(節死)하였다. 조정은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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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진주정씨 가문의 정문. 진주정씨(晉州鄭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누대에 걸쳐 정려를 하사받았다. 진주정씨 삼강각에는 하나의 비석과 열세 개의 현판이 있어 이들의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흘(鄭屹)은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의진에 임했으나, 전라감사가 무장현[현 무장면]에 현감 자리가 공석이자 현감 직책을 맡아 성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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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개항기 함양박씨 가문 삼강려. 박세영(朴世榮)의 증손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 박유정(朴由精)은 임진왜란에 순절하여 충(忠)으로, 통정대부병조참의(通政大夫兵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박유정의 아들 박효형(朴孝亨)은 부모에게 극진한 효를 다해 효(孝)로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박효형의 9세손 박동일(朴東鎰)의 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