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이만기(李晩器)는 좌랑(佐郞)을 지낸 이만중(李晩重)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환부(患部)를 혀로 핥았으며, 아버지가 죽자 3년상을 마칠 때까지 죽으로 연명했다. 형제가 우애하여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계(契)를 조직하여 인근 마을의 상(喪)에는 온 정성을 다해 돕고, 곡식을 모아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