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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0688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의미역 Bronz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박보현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이어주는 청동기시대는 날이 달린 도구를 청동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면서 그릇으로는 겉에 아무런 무늬도 장식하지 않고 납작바닥[平底]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사용하던 시기를 고고학적으로 부르는 학술 용어이다. 그러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무문토기시대로 부르기도 하고 시기 폭도 각각 다르게 인식하고 있어 매우 혼란스럽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무문토기를 사용하면서 마제석기나 청동 검을 사용하며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이 멸망하는 어느 시기까지를 청동기시대로 보고자 한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주로 하천의 자연제방이나 하천변의 구릉지대에 입지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발 200m 이상 되는 높은 곳에 입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러한 곳에서 조사된 유구(遺構)는 마을 터, 무덤, 경작지가 대표적이다.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전체를 도랑[環濠]이나 나무[木柵]로 돌려서 마을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심지어는 해발 200~400m의 높은 곳에 만들어진 집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 시기에 방어를 필요한 사회로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들이 일정한 빈터[廣場]를 가운데에 두고 그 가장자리에 일정하게 배치되고 있다. 마을 유적에서 보이는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서 청동기시대에 광장과 방어가 존재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집터는 일반적으로 움집[竪穴住居] 형태로 조사되고 있으며, 간혹 지상식(地上式: 기둥을 박은 흔적만 있는 꼴)도 보인다. 움집의 평면 꼴은 가늘고 긴 네모꼴[細長方形], 장방형(長方形), 둥근꼴[圓形], 방형(方形) 등이 있는데, 집터의 꼴이 세장방형, 장방형, 원형, 방형으로 서서히 연속적으로 바뀌어간 것으로 연구되었다. 세장방형의 집터에서는 2개 이상의 화덕이 놓여 있는데, 화덕은 움을 파서 그대로 이용한 꼴[土壙式爐址]과 움의 가장자리에 돌을 돌린 꼴[圍石式爐址]이 있어서 땔감의 종류나 문화 계통 등과 관련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원형 주거지나 방형 주거지는 주거지 가운데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고 거기에서 석재들이 출토되어서 석기 제작소 또는 계절적 이동집 등과 같은 주거지의 기능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주거지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무덤은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나무널무덤[木棺墓], 독널무덤[甕棺墓]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무덤에서 출토되는 자료는 주거지에서 출토된 자료와는 달리 폐기의 동시성이 인정되는 점에서 유구의 상대 연대를 정할 수 있어 고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고인돌과 석관묘에는 주로 간돌칼, 간화살촉, 붉은간토기[紅陶]가 부장되어 있으며, 석관묘에는 한국식 동검, 청동 거울, 부채꼴 도끼[扇形銅斧], 청동 밀개[銅鉈], 의식용 도구, 검은간토기[黑陶長頸壺]가 부장되어 있으며, 목관묘에는 주로 한국식 동검과 중국제 한경(漢鏡) 또는 한식경(漢式鏡)이 부장되어 있어서 청동기시대 무덤의 변천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현황]

구미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주거지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작은 물길을 따라 16곳에 100여 기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에서 구할 수 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가운데는 발굴 조사를 거치지 않아서 고인돌이라 인정할 수 없는 것도 있을 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출토 유물이 없기 때문에 지석묘가 언제부터 구미 지방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추측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다만 산동면 봉산리Ⅱ 구역에서 조사된 4기의 석관묘에서 미완성 석검(14호)과 석제 방추차(20호)가 출토되었지만 연대 추정의 자료로는 다소 부족하다. 이러한 점을 다소나마 보완해 줄 수 있는 자료는 해평면 월곡리에서 조사된 2기의 토광묘이다. 여기서 손잡이에 홈이 있는 간돌칼[二段柄式磨製石劍], 붉은간토기[紅陶], 자름면이 납작한 육각형[扁六角形]인 돌화살촉(1호)이 출토되어 이 무덤의 조성 시기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초기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낙동강변을 바라보는 구릉지대인 꽤 가파른 지형인 해평면 월곡리에 청동기시대 초기의 무덤이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주변에 이와 짝을 이루어야 하는 주거지가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추측이지만 주거지의 꼴은 화덕을 2~3개 갖춘 세장방형일 것이다. 앞으로 구미 지역이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해평면뿐만 아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진 유구들이 밀집해서 분포할 것이어서 자료 증가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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