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07
한자 龍山洞龍山-堂山祭
이칭/별칭 용산동 용산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천룡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용산마을 뒷산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용산마을 입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소나무]|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용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흘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용산동 용산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흘날 밤에 모시는데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용산마을은 광주천변의 평지에 있는 마을로 과거 용강마을과 화산마을이 통합하여 용산동이 되었다. 용산마을은 100여 호가 넘었는데 실제 당산제에 참여하는 호수는 30~40호에 불과하였다. 마을에는 위친계, 노인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노인회에서 당산제를 주관하였다. 현재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제2순환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어 예전 전통마을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연원 및 변천]

1993년 조사 당시 용산동은 이미 토착민과 아파트 주민들이 섞여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당산제에는 토착민들만 참여하고 아파트 주민과 기독교인들은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생활환경의 변화와 아파트 건설로 인한 외지인의 대거 유입 등으로 말미암아 당산제가 많이 축소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산마을의 당산은 두 곳으로 하나는 할아버지당산으로 여겨지는 천룡당산이고, 또 하나는 할머니당산이다. 할아버지당산은 민가에서 50m 위의 마을 뒷산에 있는데, 큰 소나무로 껍질이 다 벗겨진 고목이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앞 두 그루의 느티나무 중에서 한 그루이다. 이 나무는 광주광역시 지정 보호수이며, 수령은 약 480여 년 되었다. 나무 주변에는 자연석을 동그랗게 놓아 보호석 역할을 하고 있다. 당산의 서쪽에 60㎝×80㎝의 상석이 있으며, 바로 그 위에 헌식터가 있다.

[절차]

용산동 용산마을 당산제의 준비는 먼저 제관(祭官)을 선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관의 선정은 정월 초순에 마을회의를 열어 깨끗하고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는 사람으로서, 화주·축관·초헌관·아헌관·종헌관·정자 등 모두 6명을 선정한다. 당산제는 마을의 큰 제사이므로 화주가 정결하면서도 성심 성의껏 모셨으나, 화주에 선정되면 가릴 것이 많고 번거롭기 때문에 화주를 서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화주를 정하지 못하여 노인회가 화주역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자는 화주의 보조자로 제물(祭物) 및 금줄, 금토 등의 준비를 돕는다.

화주는 선정된 날부터 매일 목욕을 하고 제물을 구입한 이후로는 특히 청결 유지에 정성을 다하였다. 마을 앞에 당샘이 있었는데, 당산제를 모시기 전에 마을 청년들이 샘을 깨끗이 청소를 한 후 샘물을 떠다가 화주가 목욕을 하고 제물의 준비도 하였으나 지금은 매몰되고 없다. 제비(祭費)는 참여자들이 얼마씩 자진해서 내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가끔은 희사금과 마을 자본에서 충당한다. 화주는 돼지머리만 구입하고, 그밖에 제물은 마을에서 나는 것을 쓴다. 제물의 장만은 화주의 집에서 하는데, 비린 것은 절대 안 하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스크를 쓰며 말도 안 한다. 시식을 해서도 안 되며, 나물에는 간을 소금으로만 한다. 제주는 동네 중앙의 당샘의 물로 담갔으며, 화주가 그 술을 품고 잠을 잔다. 금줄과 금토는 정월 10일 무렵 화주와 정자가 당산 주위와 화주집 앞에만 한다. 과거에는 당샘에 금줄을 쳐 부정의 출입을 막았으며, 마을 입구에 생대나무를 세워 금줄을 쳤으나 근래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된 이후에는 마을길에는 금줄을 치지 않고 있다.

용산동 용산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 9시에 시작하여 저녁 11시에 끝난다. 굿꾼들은 초저녁에 마을회관 앞에 모여 굿을 치고 놀다 시간이 되면 화주집으로 가서 제물의 뒤를 따른다. 제물은 제관들이 들고 가는데 천룡당산에 오르는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들 것을 만들어 네 사람이 들고 간다. 천룡당산에서의 제는 제관과 굿꾼들만 참여를 하는데, 제관들의 복장은 깨끗한 한복을 입는다. 천룡당산에 도착한 후 나발을 불어 제의 시작을 알리고, 끝난 후에 나발을 불면 비로소 각 가정에서 메를 올린다. 이때부터 비린내 나는 생선의 준비도 가능하다. 천룡당산에서의 진설은 시루, 명태, 문어, 나물 등만 올린다. 제가 끝나면 소지, 음복을 간단히 하고 헌식을 하는데, 헌식은 제물을 조금씩 덜어 백지에 싸서 당산 옆에 묻는다. 마을 앞 할머니당산에서의 제는 제관이나 제차(祭次)는 천룡당산에서와 같지만 제물, 참여 범위 등이 상이하다. 할머니당산에서는 비린 것과 돼지머리를 쓰며 남녀노소 누구든지 굿꾼들과 어울린다. 소지나 음복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능하다. 헌식하고 남는 제물은 그곳에서 모두 먹는다. 헌식은 진설했던 것을 조금씩 백지에 싸서 당산 옆의 헌식터에 묻고 돌로 덮는다. 이는 개나 그밖의 짐승들이 파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는데. 예전에는 정월 그믐날까지 하고 마을회의를 하여 당산제 결산과 아울러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품삯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굿을 할 사람이 없고 노인들만 하기 때문에 걸궁을 며칠만 간단히 한다.

[현황]

용산동 용산마을 당산제는 생활환경의 변화와 아파트 건설로 인한 외지인의 대거 유입 등으로 말미암아 많이 축소하여 제를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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