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카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27
한자 南國-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원소재지 남국카페 -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
성격 요식업소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카페.

[개설]

남국카페(南國-)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며, 대부분 지주와 고위 관리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었다. 1942년 7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큰 충돌이 있었다. 발단은 남 아무개가 김용구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유도 3단에 6년간 권투를 익힌 김용구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큰 한방을 날렸는데, 남 아무개가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법원과 검사국 일본인 직원들이 단체로 김용구에게 덤벼들었고, 김용구의 친구들 또한 김용구를 돕기 위해 싸움에 휘말렸다. 사건 후, 조선인 청년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나 대부분 훈방 조치로 풀려났다. 하지만 김용구는 구속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위치]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 파레스호텔 옆 길가에 있었다.

[변천]

남국카페의 변천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초기 경영주는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만석꾼의 아들 김찬수(金燦洙)이다. 김찬수는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을 졸업한 뒤 26세에 남국카페 경영을 시작하였으며, 황금동에 중국 요리집 송죽루(松竹樓)도 함께 운영하였다. 광복 후 김찬수는 고향에 돌아가 봉산면장을 역임하였다. 남국카페의 경영권은 계림동의 부호 조중봉에게 이어졌다.

[형태]

남국카페의 정확한 형태에 대해서는 남겨진 자료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전국에서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현황]

남국카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집합소였다. 또한 1942년 발생한 사건은 일제 권력 기관의 직원들에 맞섰던 것으로 당시 광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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