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동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293
한자 -勞動靑年會
영어공식명칭 Young Catholic Workers
이칭/별칭 지오세(JOC)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금남로3가 3-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가톨릭노동청년회 설립
현 소재지 가톨릭노동청년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금남로3가 3-5]지도보기
성격 청년 단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3가에 있는 천주교 단체.

[개설]

한국의 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58년에 처음 창설되었으며, 광주에서는 1961년에 지오세 광주연합회로 발족되었다.

[설립 목적]

가톨릭노동청년회는 근로 속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여 노동자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가톨릭노동청년회는 1925년 벨기에에서 창립되었다. 한국의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창설자인 조셉 카르뎅 주교가 내한하여 1958년 11월 17일 명동성당에서 주교 집전 아래 9명의 투사가 선서식과 미사를 봉헌하면서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이어 투사들이 정식으로 팀을 조직하고 각 본당과 직장 조직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1960년에 서울교구연합회가 결성되었다. 1961년부터 점차 지방 교구로 확산되며 10월 21일에 전국평의회가 조직되었고, 11월 2일에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가톨릭 평신도 단체로 정식 인준을 받는 한편, 국제가톨릭노동청년회에도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광주에서는 제희우[요셉]가 전국평의회에 참석한 이후 광주교구 내 지오세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1961년 11월 8일 일신방직, 전남방직, 전남제사 중심의 회원 22명이 김종남 신부의 지도하에 지오세 광주연합회를 발족하도록 하였다. 이듬해인 1962년 11월 19일에는 전남대학교 의대 간호사 23명이 한 팀을 조직하였다.

한편 1962년 2월 15일 가톨릭노동청년회 남자팀이, 같은 해 11월 전라남도 나주에서 한 팀이 조직되었다. 1963년에는 상무대 군인을 중심을 한 팀이 발족하였다. 1970년 전라남도 함평, 무안, 담양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가 결성되었다. 1975년 본당의 비협조 속에서 조직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77년부터는 탄압이 노골화 되었으며 1979년이 되자 존립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였다. 1980년 역시 노동자의 탄압과 지오세 회원 탄압으로 역량 축적과 내적 자질 향상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가톨릭노동청년회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광주 북동 지부에서 활동한 홍순권은 지오세 회원들과 시신 염습, 수혈반 등으로 운동에 참여했고,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3대, 9대, 13대 지도 신부를 역임한 김성용[프란치스코] 신부는 「분노보다 슬픔이」라는 글로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현황]

2020년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투쟁했던 지오세 등 여성 노동자 그룹 소속 여성 운동가들에 대해서 다루었다.

[의의와 평가]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신앙을 바탕으로 노동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1970년대 후반 광주·전남 지역 기층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5,18광주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며 군부 독재에 항거하였다.

[참고문헌]
  • 『광주대교구 50년사』(천주교 광주대교구, 1990)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https://www.kdemo.or.kr)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http://cnu518.j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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