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39
한자 -夜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죽봉대로119번길 28-13[광천동 589-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57년 - 북동 본당 광천동 공소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10월 15일연표보기 - 들불야학 옛터 5.18 사적지 제2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0년 11월 16일 - 북동 본당 광천동 공소에서 광천동성당으로 승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8년 7월 23일 - 들불야학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창립
소재지 광천동성당 - 광주광역시 서구 죽봉대로 119번길 28-13[광천동 589-4]지도보기
성격 옛터
문화재 지정 번호 5.18 사적지 제27호

[정의]

1978년 7월부터 노동자들에게 야학을 하였던 터이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 시민들의 분노와 투쟁을 담을 수 있는 소식지 『투사회보』가 제작되었던 장소.

[변천]

1970년대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은 공장지대였고, 그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다. 광천동의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대학생들이 만든 들불야학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천동성당에서 시작하였다. 광천동성당은 1970년 11월 16일 임동 주교좌 성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들불야학은 1978년 7월 23일 광천동성당 내 교리실에서 시작되었다.

들불야학은 1978년 7월 23일 광천동성당 교리실에 임낙평, 신영일, 나상진, 전복길, 최기혁, 김영철, 박기순전남대학교 학생 들과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창립되었다. 들불야학은 6개월을 한 학기로 하는 1년 6개월 과정이었다. 정원은 남녀 구별 없이 50명으로 한정하였고, 주로 가난으로 배움을 중단한 것이 아쉬운 광천공단의 청년 노동자들이 입회하였다.

들불야학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노동 야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노동 야학으로서 교육 목적은 사회 구조의 변혁을 위한 노동가의 배출이었다. 들불야학 교사들은 영어· 수학도 가르쳤지만, 노동자의 의식화와 조직화, 민주시민의 양성을 우선시하였다. 정규 학교와는 다른 교재를 자체 제작해서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수업 방식은 들불야학5.18민주화운동 시기 유인물 제작을 쉽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1980년 5월 21일 녹두서점에 모인 윤상원, 정상용, 이양현, 정현애, 김상집 등은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알리는 소식지의 발간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윤상원이 이끄는 들불야학팀이 그 일을 맡았다. 윤상원들불야학 교사 전용호에게 들불야학이 전담하여 소식지를 만들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고, 들불야학으로 가서 교사와 학생 10명을 모아 소식지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5.18민주화운동의 소식을 전한 『투사회보』들불야학에서 제작하였으니, 들불야학 터에서 『투사회보』가 만들어졌다.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를 1980년 5월 26일까지 제작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천동 효광초등학교 동쪽 방향에 광천동성당이 있다.

[현황]

광천동성당은 현존하지만, 들불야학이 열렸던 교리실은 건물이 노후하고 소방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부지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어 교리실의 입구만 남기고 철거되었다.

[의의와 평가]

5.18민주화운동의 산실이 되었던 들불야학이 있었던 곳이다. 2013년 10월 15일 5.18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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