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448
한자 黃山祠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01[원산동 268-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25년연표보기 - 경열사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경열사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경열사에서 황산사로 개칭하고 재건
현 소재지 황산사 -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01[원산동 268-4]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장흥고씨
관리자 장흥고씨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실.

[개설]

황산사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송설정공(松雪亭公) 고중영(高仲英), 고경조(髙敬祖), 고성후(髙成厚) 등을 배향하고 있다. 고중영은 1540년(중종 35)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가 모함으로 진도로 귀향갔으며, 고중영의 아들 고경조는 1552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목사에 이르렀다. 고성후고경조의 아들로서 1583년 전중어사를 지냈으며, 1592년 금마군수에 임명되어 권율의 휘하에서 진주싸움에 참가하였다. 이원(而遠) 위덕의(魏德毅)는 1573년 사마시에 입격, 임진왜란 때 주부를 제수하여 형조좌랑에 임명되었으며, 진원현감을 지내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별세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산52-3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건립 경위를 보면 1725년(영조 원년)에 유림들이 고중영, 고경조의 유풍을 추모하여 광주에 경열사(景烈祠)를 짓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광복 이후 장흥고씨(長興高氏) 문중에서 1957년에 황산사로 재건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공기와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재실로 가는 길에 장흥고동재모선공적비(長興高東在慕先功績碑)가 세워져 있으며 재실 입구에 황산사 조성비가 있다. 광복 이후 세워진 재실로 노후되었지만 다른 곳에 비하여 관리가 잘 되고 있다. 1960년 이후부터 음력 3월 3일에 제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황산사는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훼철된 사우를 광복 이후 재건하여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http://www.gjsg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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