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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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光州鄭公淹旌閭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6-4[양림동 157-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611년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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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05년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3년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정려비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석조 정려각 재건 |
현 소재지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6-4[양림동 157-11] |
원소재지 | 효자광주정공엄정려 -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6-4[양림동 157-11] |
성격 | 비각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광주정씨 종중 |
관리자 | 광주정씨 종중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엄의 정려비와 정려각.
[개설]
문신 정엄(鄭淹)[1528~1580]의 효자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은 본관이 광주(光州)로 정만종(鄭萬鍾)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뒤 죽었다는 효성이 알려져 1611년(광해군 3)에 효자 정려를 내렸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서서평길 26-4[양림동 157-11]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1611년에 정려각을 건립하였고 1705년 1차 중수하였으나 오랜 기간 닳아져 1953년에 정려비를 세우고, 1975년에 석조 정려각으로 재건하였다.
[형태]
효자광주정공엄정려는 2단의 받침을 둔 좌대 위에 비몸을 세웠다. 비머리는 종모양으로 변형 운문을 조식하였고, 비몸과 같은 돌이다. 사방에 석조 기둥으로 정려각을 세웠다.
[현황]
효자광주정공엄정려의 비문은 정규종(鄭圭綜)이 지었고, 광주정씨화수계(光州鄭氏花樹契)에서 세웠다. 비제는 앞면에 '증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 겸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동지경연춘추관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세자좌부빈 행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지제교 양촌정선생 정려비명(贈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弘文館提學 藝文官提學同知 經筵春秋館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世子左副賓客行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 經筵叅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 敎楊村鄭先生 旌閭碑銘)'이라고 되어 있다. 정려각 앞면에 '효자광주정공엄지려(孝子光州鄭公淹之閭)'라 새겼다. 충견과 관련한 설화가 전하고 정려각 곁에 석구상(石狗像)이 있다.
[의의와 평가]
효자광주정공엄정려는 조선 중기 효행 정신의 계승을 알 수 있고, 후인들의 추숭 활동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제도사나 정신사, 향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