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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일어난 독립운동.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경까지 한국의 자주독립과 한국민의 자유 평화를 쟁취하려는 목적으로 국내외의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1919년 3월 8일 대구부(大邱府) 큰장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도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경산(慶山)에서는 대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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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만조(康萬祚)[1893~?]는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 전도사로 목회 활동 중 항일에 관한 설교를 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강만조는 1893년 1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에서 태어났다. 강만조는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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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하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인력 수탈. 1944~1945년 일제 강점기 말기 전치체제 하에서 일제는 인적·물적 수탈을 강화해 나갔다. 그런 가운데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과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을 통해 전장과 공장 등지로 우리 민족을 강제적으로 동원하였다. 그런 가운데 경산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징용 되었으며, 대왕산 죽창의거와 같은 저항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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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에서 조직된 기독교 청년운동 단체. 경산기독청년회(慶山基督靑年會)는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 최초의 청년운동 단체로 1920년 11월 16일 창립되었다. 경산기독청년회는 기독교 청년운동 단체로 설립되어 야학 실시, 강연회 개최 등을 통하여 청년계몽을 위해 활동하였다. 경산기독청년회는 1921년 10월 17일 경산 지역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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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활동한 소년운동 단체. 경산소년회(慶山少年會)는 1927년 설립된 소년운동 단체이다. 일제 강점기 소년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몰아내고 광복을 목적으로 한 실력양성운동으로, 1920년을 전후로 전개되었다. 방정환(方定煥)이 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鎬) 등과 함께 1921년에 조직한 천도교소년회를 시작으로 여러 소년운동 단체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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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 단체. 경산청년동맹(慶山靑年同盟)은 사회주의 계열의 경산 지역 청년운동 단체로 1927년에 결성되었다. 이후 다른 청년운동 단체를 통하하여, 산하에 하양지부와 안심지부를 두었다. 경산청년동맹은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을 전개하고 단일 노선을 지향하기 위하여 1927년 10월 18일경에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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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 경산청년회(慶山靑年會)는 경산 지역 청년 계몽을 위하여, 경산기독청년회(慶山基督靑年會)를 배경으로 1921년 10월 17일 창립된 청년운동 단체이다. 경산청년회는 청년 계몽을 위한 노동야학의 개설과 문맹퇴치 등 각종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경산청년회는 1927년 경산청년동맹(慶山靑年同盟)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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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계획하였던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부터 전개된 3·1운동은 경상북도 경산(慶山) 지역으로도 파급되었다. 이 무렵 경산에서는 대구 사립계성학교(私立啓聖學校) 출신 전덕수(全德洙), 경산 삼북동 교회 목사 서성오(徐聖五) 등이 1919년 3월 11일 경산읍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던 중 기밀 누설로 실패하고 말았다. 1910년 국권피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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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현(慶山縣)은 1317년(충숙왕 4) 기존의 경산군(慶山郡)을 승격시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 지역[신천동·남방동·내동·여천동·유곡동·점촌동 제외]과 남천면, 압량읍 북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신매동·삼덕동·성동·연호동·고모동·시지동·매호동·사월동·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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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 단체. 경우단(慶友團)은 1927년 2월 경산 지역의 무산청년(無産靑年)인 염상섭(廉相燮)·김영숙(金榮淑)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 단체이다. 경우단은 1920년대 초 경산 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던 경산청년회가 침체된 가운데 종래의 계몽주의 청년운동에서 탈피하여 무산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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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두어졌던 지방 행정 구역으로는 장산군(章山郡)[경산군(慶山郡)], 하주(河州)[하양현(河陽縣)], 자인현(慈仁縣)과 구사부곡(仇史部曲)·안심소(安心所)·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이지부곡(貍只部曲)·이지은소(梨旨銀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장산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洞) 지역 서부와 남천면, 압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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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경산 지역의 교육은 시대별로 고려 시대의 향교, 조선 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현재 경산 지역에 소재한 대학교는 10개에 이르며, 경상북도의 다른 시·군과 달리 인구가 증가해 오면서 학교 역시 지속적으로 설립되어 왔다.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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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제가 차관 1,300만원을 빌미로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하자, 모금을 통해 이를 저지하려는 운동이다. 경산 지역에서는 1907년 4월부터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범국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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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권병호(權炳湖)[1886-?]는 1908년 1월에서 4월 사이 독립된 소규모 의병 부대를 조직하여 경산·청도·장성·울산 등지에서 총기 및 군자금 모집과 일본 순사 처단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권병호는 1886년경 경상북도 경산군 남면(南面) 신석동(申石洞)[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신석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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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까지 경상도 소속의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은 1895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대구부(大邱府) 소속의 경산군(慶山郡)·하양군(河陽郡)·자인군(慈仁郡)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23부제가 13도(道)로 재편되면서, 세 고을은 경상북도 소속이 되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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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경룡(金慶龍)[1923~1946]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2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경룡은 1923년 6월 7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송내리 155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경룡은 의거 이전까지 농업에 종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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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달윤(金達潤)[1902~1949]은 1919년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우들과 함께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달윤(金達潤)은 1902년 경상북도 하양군(河陽郡) 와촌면(瓦村面) 시천동(匙川洞)[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시촌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김영윤(金榮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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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돌(金命乭)[1916~1983]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부대장으로 활약하였다. 김명돌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김성명돌(金城命乭)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16년 11월 21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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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생(金武生)[1898~1971]은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생으로 1919년 3월 8일 대구 큰장[서문시장]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무생은 1898년 경상북도 경산군 고산면(孤山面) 사월동(沙月洞)[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에서 출생하였다. 김무생은 1919년 3월 대구의 계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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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선암(金先岩)[1917~2011]은 경산의 평사교회(坪沙敎會) 장로로 194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선암은 1917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다문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김선수(金善壽)이다. 김선암은 1943년 경산의 평사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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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욱(金聲旭)[1870~1949]은 경산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열린 영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성욱은 1870년 8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후 경상북도 영덕군으로 이주하였다. 김성욱은 경상북도 경산 출신으로 1919년 3월 당시 지금의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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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위도(金渭道)[1920~1989]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위도는 1920년 9월 4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송내리 153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김성백(金成伯)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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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봉(金仁鳳)[1920~1982]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정보연락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인봉은 1920년 9월 4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54번지에서 출생하였다.[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1916년 7월 18일 출생으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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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임방(金任方)[1916~1991]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임방은 1916년 1월 12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산양리 29번지[지금의 경산시 남산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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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만(金鍾萬)[1919~1980]은 경산의 상림교회(上林敎會) 집사로 있으면서, 194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종만은 1919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보인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김광성의(金廣盛義)이다. 김종만은 1943년 경산의 상림교회 집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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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호(金鍾鎬)[1907~2008]는 1943년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 장로로 재임 중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종호는 1907년 12월 5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에서 태어났다. 김종호는 1943년 경산의 봉회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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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특술(金特述)[1923~2001]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특술은 1923년 1월 29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송내리 86번지[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송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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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홍준(金洪俊)[1922~1993]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홍준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김본홍준(金本洪俊)이라 이름을 고치기도 하였다. 1922년 10월 24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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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의 강제징용 반대 투쟁. 대왕산 죽창의거는 경산 지역의 농민 출신 청년들이 1944년 일제의 강제징용을 거부하며 일으킨 항일운동이다. 이른바 ‘경산 결심대(決心隊)의 강제동원 거부투쟁’으로 일컫기도 한다.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면서, 연합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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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하에서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징용 반대 투쟁. 1944년 일어난 대왕산 죽창의거(大旺山竹槍義擧)는 ‘경산 결심대(決心隊)의 강제동원 거부투쟁’으로 일컬어지는 경산 지역의 대표 항일 투쟁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개전 이래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터로 끌고 갔다. 그런 가운데 직접적 항쟁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게 되는데, 대왕산 죽창의거도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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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한 대한광복회의 군자금 모집 활동. 대한광복회는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이 중심이 되어 1915년 음력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되었다. 대한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함과 동시에 만주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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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산 지역에 조직되었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大韓協會) 자인지회(慈仁支會)는 1908년(융희 2) 경상북도 자인군 지역에 설립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대한협회는 1907년(융희 1) 11월 10일 설립된 전국적 조직으로 5,000여 명의 회원과 37개 지회를 두고 있었다. 대한협회의 강령은 ‘교육의 보급, 산업의 개발, 생명재산의 보호, 행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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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경산 지역의 독립운동은 대한제국기 국권회복운동으로 전개된 의병항쟁과 애국계몽운동, 1910년대의 독립운동과 3·1운동, 1920년대 국내외의 독립운동과 대중운동, 그리고 1930년대 이후 1945년까지 전개된 국내외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대한제국기 의병 전쟁은 1894년 갑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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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식(朴永植)[1918~1993]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2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박영식은 1918년 3월 27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59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박경석(朴慶碩),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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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달(朴在達)[1917~1963]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를 주도하였다. 박재달은 1917년 8월 15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38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아버지는 박만조(朴晩祚), 어머니는 손문순(孫文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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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혜광(朴惠光)[1920~2001]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2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박혜광은 1920년 11월 26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59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박종현, 어머니는 윤덕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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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상연(裵相淵)[1917~1981]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2소대장으로 활약하였다. 배상연은 1917년 11월 16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37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아버지는 배진헌(裵鎭憲)이다.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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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채(白南埰)[1888~1951]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하던 중 대구 지역의 개신교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1919년 3월 8일 큰장[서문시장]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백남채의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성숙(聖淑), 호는 석천(石泉)이다. 1888년 1월 1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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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사회 변화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전개된 사회 개혁 운동. 일제 강점기 사회 운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뜻한다. 대표적으로는 청년운동·형평운동·신간회운동 등이 있다.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사회 운동은 1920년대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사회운동은 청년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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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의 교육 도시 성립 배경과 역사. 경상북도 경산시는 ‘교육 도시’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의 여러 시·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꾸준히 초·중·고등학교가 설립되어 왔고, 대구광역시와 인접하고 있으며 교통의 발달로 접근성이 좋아져 많은 대학교가 경산시로 옮겨오거나 새롭게 설립되었다. 경산시가 교육 도시로 자리매김 한 것은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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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성상룡(成相龍)[1916~1988]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성상룡은 191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30-1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성호식이며, 어머니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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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수답(宋水畓)[1919~1994]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송수답은 1919년 12월 6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56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태수(宋台壽)이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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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사회운동. 신간회(新幹會)는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이다. 1927년 2월 15일 경성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창립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결의된 강령은 ‘1.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 ‘2.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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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근대 교육 수용 및 학교 설립 운동.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요체는 ‘실력’과 ‘힘’을 길러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신교육운동이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대구광문사·대동광문회·대구광학회·달성친목회·강의단·봉성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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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이 전개한 신사참배반대운동.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2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시체제기에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다. 이에 조선예수교장로회(朝鮮耶蘇敎長老會)는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사 참배의 예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1941년 경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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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창률(安昌律)[1918~1945]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안창률은 1918년 6월 2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남곡동(藍谷洞)[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남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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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치대(安致大)[1918~1986]는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평사교회(坪沙敎會)·상림교회(上林敎會) 장로를 지낸 인물로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안치대는 1918년 8월 7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에서 태어났다. 안치대는 경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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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치준(安致俊)[1913~1973]은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 장로로 1943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안치준은 1913년 12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에서 태어났다. 안치준은 1943년 경산의 봉회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봉회교회는 상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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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 운동. 대한제국 시기 국권 회복 운동은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 자강 계열의 민족 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 자강 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주도한 대표적 단체는 대한자강회(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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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금호강이 관통하는 경산은 고대 압독국(押督國)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는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승(高僧) 원효(元曉)가 배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한 일연(一然)이 경산에서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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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한곤(兪漢坤)[1902~1962]은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평사교회(坪沙敎會)·상림교회(上林敎會)에서 활동하였다.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유한곤은 1902년 12월 7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유고미(兪古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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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서 1910년 사이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무장 항일 투쟁.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한말 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을 전후해서 일어난 전기의병[을미의병(乙未義兵)],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전후해서 재기한 중기의병[을사의병(乙巳義兵)],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한국군 강제 해산을 전후하여 일어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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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이봉조(李鳳兆)[1885~1962]는 이석조(李石兆)의 의진에 가담하여, 1907년 음력 5월부터 10월까지 청도·경주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봉조는 1885년(고종 22) 경상북도 경산군 진량(珍良)[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이봉조(李鳳祚)이다. 이봉조는 1907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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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태(李鍾泰)[1916~2000]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이종태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산본종태(山本鍾泰)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16년 5월 20일 경상북도 경산군 용성면 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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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호(李鍾昊)[1922~2011]는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평사교회(坪沙敎會)·상림교회(上林敎會)의 목사로 시무하였다. 1943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종호는 1922년 9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보인리에서 태어났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성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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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는 일반적으로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를 말한다. 물론 1905년 통감부 설치 이후 일본의 대한 제국에 대한 보호 통치도 사실상 식민 지배와 다름없다고 보고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 기간을 4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1905년부터 1910년까지는 비록 보호국이라는 형태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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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 자인청년회(慈仁靑年會)는 자인 지역의 청년운동 단체로 1922년에 창립하였다. 자인청년회는 문맹 퇴치와 상호부조를 창립 목적으로 하였다. 자인청년회는 1921년 설립된 자인청년구락부(慈仁靑年俱樂部)를 개편하여 1922년 설립되었다. 자인청년회는 1921년 경산군 자인면[지금의 경산시 자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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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자인현(慈仁縣)은 757년(경덕왕 16) 노사화현(奴斯火縣)을 개칭하여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남산면·용성면과 진량읍 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별호는 ‘기화(基火)’ 또는 ‘인산(仁山)’이다. 자인현은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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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달용(曺達用)[1894~1985]은 경상북도 경산 출신 개신교회 장로(長老)로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평사교회(坪沙敎會)·상림교회(上林敎會)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조달용은 1894년 3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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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경산은 조선 시대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 세 현은 경주부의 속현으로 있었지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경산과 하양은 독립현이 되었다. 하지만 자인은 1637년(인조 15)까지 경주부의 속현으로 남아있었다. 경산·하양·자인은 현으로서는 규모가 작았기에 하양은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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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영모(曺永模)[1923~1951]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헌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조영모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삼정영모(三井永模)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으며, 조태식(曺台植)·조태식(曺泰植) 등의 이름도 사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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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원준(蔡元俊)[1924~1978]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채원준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인천원준(仁川元俊)으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24년 3월 25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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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찬원(蔡燦元)[1916~1978]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채찬원은 1916년 8월 20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188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채재석(蔡在錫)이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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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사회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민족의식이 급격히 성장한 청년층은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새로운 모색으로 청년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청년단체 조직은 개항기 선각적인 유림의 맥을 잇는 청장년층의 자본가와 지주들의 지도하에 청년 지식인에 해당하는 실무 담당자 및 회원들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경산 지역에서는 1920년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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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대구의 사립계성학교(私立啓聖學校) 재직 중 1919년 3월 8일에 열린 큰장[서문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최경학은 1890년 8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당시 경상도 하양현(河陽縣) 소속]에서 태어났다. 최경학은 대구의 계성학교에 진학하여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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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정(崔基貞)[1924~1989]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기정의 본관은 흥해(興海)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흥산기정(興山基貞)으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24년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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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덕종(崔德鍾)[1917~1967]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3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덕종의 본관은 영양(永陽)[영천(永川)]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영산덕조(永山德祚)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17년 5월 20일 경상북도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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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동식(崔東植)[1926~2005]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헌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동식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영산동식(永山東植)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26년 1월 27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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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만갑(崔萬甲)[1913~1970]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1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만갑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산본만갑(山本萬甲)으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13년 5월 25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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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순한(崔順翰)[1924~1950]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제2소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순한은 1924년 2월 18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 산양리 153번지[지금의 경산시 남산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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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인환(崔仁煥)[?~?]은 폭탄 제조, 총독 암살 모의,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계획하였으나 검거되었다. 최인환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최인환은 1935년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재학 당시 항일투쟁에 관심을 가진 의열적인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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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태만(崔泰萬)[1918~1993]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항하여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 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 때 헌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최태만의 본관은 월성(月城)[경주(慶州)]이며, 일제의 창씨개명으로 고산태만(高山泰萬)으로 이름을 고치기도 했다. 1924년 4월 3일 경상북도 경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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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운동 단체. 하양청년회(河陽靑年會)는 하양 지역 최초의 청년 운동 단체로 1927년 8월 20일 창립되었다. 하양청년회는 노동 야학 설립, 소작인의 보호 등을 창립 목적으로 하였다. 하양청년회는 1928년 5월 11일 경산청년동맹 하양지부로 전환되었다. 하양청년회는 하양에 청년 단체가 없음을 유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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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양현(河陽縣)은 고려 초 하주(河州)였다. 1018년(현종 9) 하양으로 개칭하고 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괴전동·동내동·매여동·신서동 일대를 관할하였다. 고을 이름인 ‘하양’은 금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북쪽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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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동상(許東相)[1908~1951]은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대구에서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 허동상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화중(和重), 호는 춘정(春庭), 이명은 허동훈(許東薰)이다.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의 20대 손이다. 1908년 7월 6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07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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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병률(許秉律)[1885~1943]은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입단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중국 상하이와 만주 등지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허병률의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문가(文可), 호는 일우(一友), 이명은 허화(許和)이다. 1889년 2월 2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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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해방 초 정치적 혼란 속에 경산 지역 내에서는 좌우익 간의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 비교적 안전지대로 유지되었으나,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수백 명의 경산군민 보도연맹원이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까지 경산은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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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영조(玄永祚)[1910~1983]는 일제 강점기 경산 상림교회(上林敎會) 집사를 지내면서, 1943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영조는 1910년 5월 7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현종후(玄鍾厚)이다. 현영조는 1943년 경산의 상림교회 집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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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용주(玄龍珠)[1906~1980]는 일제 강점기 경산 상림교회(上林敎會) 장로를 지내면서, 1943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용주는 1906년 6월 2일 경상북도 경산군 진량면 상림동 317번지[지금의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현상유(玄相裕)이다. 현용주는 1943년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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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준이(玄俊伊)[1901~1968]는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평사교회(坪沙敎會)·상림교회(上林敎會)의 장로를 지냈다. 1943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준이는 1901년 8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에서 태어났다. 현준이는 경산의 봉회교회·평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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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 형평운동(衡平運動)은 근대 이후에도 차별을 받던 백정(白丁)의 인권 회복을 위해 전개된 신분 해방 운동이다. 경산 지역에서는 1920년대에 형평동진청년회(衡平同進靑年會)·경산형평청년회(慶山衡平靑年會)·자인형평청년회(慈仁衡平靑年會)·하양형평청년회(河陽衡平靑年會) 등의 단체가 형평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