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군[고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382
한자 慶山郡[高麗]
영어공식명칭 Gyeongsan-gun[Goryeo]
이칭/별칭 옥산(玉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308년연표보기 - 장산군(章山郡)을 경산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317년 - 경산군을 경산현으로 승격하고 현령을 파견
개정 시기/일시 1390년 - 경산현을 경산군으로 승격하고 지군사를 파견
폐지 시기/일시 1392년 - 경산군을 경산현으로 강등

[정의]

고려 후기 경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경산군(慶山郡)은 1308년(충선왕 복위 1) 충선왕이 복위하면서 왕의 이름을 피휘(避諱)하기 위해 기존의 장산군(章山郡)을 고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압량읍과 동 지역 일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기존 장산군의 ‘장(章)’이 왕의 이름인 ‘장(璋)’과 발음이 같다고 하여, 고을 이름을 경산군으로 개칭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의 장산군(章山郡)조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0 경산현(慶山縣) 편 등에 고려 후기 설치되었던 경산군의 연혁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산현 편에 따르면, “본디 압량소국(押良小國)이 었었는데[압독(押督)이라고도 한다], 신라 지미왕(祗味王)이 취하여 군(郡)을 설치하고, 경덕왕이 장산군(獐山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고려] 현종 무오년(1018)에 경주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명종(明宗) 임진년(1172)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충렬왕(忠烈王) 34년 무신년(1308)에,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한 지 해가 넘지 아니하였는데, 왕의 이름자를 피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고, 충숙왕(忠肅王) 4년 정사년(1317)에 국사(國師) 일연(一然)의 고향인 까닭으로써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으며, 공양왕 2년 경오년(1390)에 왕비(王妃) 노씨(盧氏)의 고향인 까닭으로써 지군사(知郡事)로 올렸는데, 본조 태조 원년 임신년(1392)에 다시 현령으로 낮추었다. 별호(別號)는 옥산(玉山)이다.”라고 하였다.

[변천]

1308년 개칭된 경산군은 1317년에 국사 일연의 고향이라 하여, 현령을 파견하였다. 경산군의 전신인 장산군(章山郡)은 1018년(현종 9) 경주의 속군(屬郡)이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파견하였다. 그리고 경산군으로 개칭 된지 9년 만인 1317년(충숙왕 4)에 현령을 파견하는 ‘현’으로 읍격이 승격되었다. 이어 1390년(공양왕 2)에는 공양왕의 왕비인 순비 노씨의 고향이라 하여, 지군사를 파견하는 ‘군’으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2년 후 태조가 즉위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경산군은 다시 현령이 파견되는 경산현으로 강등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후기 경산의 읍격은 감무를 파견하는 군, 현령을 파견하는 현, 지군사를 파견하는 군, 다시 현령을 파견하는 현으로 80여 년 동안 복잡하게 변모하였다. 이는 인적 연고를 중요시 했던 중세 지방 행정의 특징과 14세기 지방 통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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