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85
한자 慶尙道慶山縣邑誌
영어공식명칭 『Gyengsang-do Gyeongsan-hyun Eupji』
이칭/별칭 경산읍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58년연표보기 - 『경상도 경산현읍지』 편찬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성격 읍지
편자 경산현
권책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세로 29.2㎝|가로 19.2㎝

[정의]

1758년 편찬된 경산현의 읍지.

[개설]

『경상도 경산현읍지』는 진단학회 소장본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상백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영조 연간 진행된 네 차례의 전국 읍지 편찬 사업 중 제1차 사업 때 편찬된 것이다.

[저자]

『경상도 경산현읍지』는 조정의 지시에 따라 당시 경산현령이었던 이이병(李頤柄)의 주도로 편찬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영조 연간 진행된 네 차례의 전국 읍지 편찬 사업 중 제1차 사업이 1757년(영조 33)에 시작되었다. 이때 정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찬읍지와 숙종 대 『여지승람』 수정증보 사업의 성과를 반영하고자 했다. 숙종 대 편찬한 읍지가 고을에 남아 있는 경우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기준으로 수정증보를 진행하였다. 수록항목에 대한 정확한 세부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읍지편찬자들은 주로 인물이나 이들의 행적, 혹은 시문 수록에 집중하였다. 그런 가운데 경산현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바탕으로 읍지를 편찬하게 된다.

[형태/서지]

『경상도 경산현읍지』는 1책의 필사본으로 행자수는 10행 20자, 크기는 세로 29.2㎝, 가로 19.2㎝이다. 인찰정간과 지도는 없으며, 모두 5장으로 엮여져 있다.

[구성/내용]

『경상도 경산현읍지』의 항목은 강역·건치연혁[진관·관원 포함]·군명·방곡·성씨·풍속·산천·토산·성곽·봉수·궁실·누정·학교·역원·제언·불우·사묘·고적·명환·인물·제영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를 ‘大丘’라 하지 않고 ‘大邱’라 쓴 것은 원본을 베끼는 과정에서 수정하였기 때문이다. 읍지 편찬 당시 고을의 현황을 중시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이후 폐지되었거나 없어진 것은 생략하였으며, 추가한 내용이 있어도 신증 표시를 하지 않았다. 항목 중 방곡·궁실·제언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이후 새롭게 추가된 항목이다.

방곡(坊曲)조에서는 읍내면에 성내 4부, 성외 11방(坊), 동면에 11방, 남면 11방, 서면 12방, 북면에 7방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방은 함경도의 사(社)와 함께 읍면에 해당하는데, 당시 경산현에서는 방을 면의 하위 단위인 동리(洞里)로 인식하고 있었다. 1760년(영조 36) 완성되는 『여지도서』의 「경산현읍지」와 비교해 인물과 시문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도 경산현읍지』는 18세기 중반 경산현의 역사·지리, 인문 환경, 지방 행정 및 경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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