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지식산업지구 내 묘역식 지석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790
한자 慶山知識産業地區內墓域式 支石墓
이칭/별칭 경산지식산업지구 내 묘역식 고인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51-5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인돌
양식 묘역식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 경산지식산업지구 내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 시대 무덤.

[개설]

경산 대학리·교리 유적은 경산지식산업개발에서 시행하는 경산지식산업지구 건설공사로 인해 동북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15년 9월 9일부터 2017년 3월 17일까지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중 2016년 11월 10일부터 2017년 3월 17일까지 실시된 5차 발굴조사[대학리 51-5번지 일원, 573㎡]에서 묘역식 지석묘(墓域式 支石墓) 6기가 확인되었다.

묘역식 지석묘는 매장 주체부 주위를 방형이나 원형으로 구획한 뒤 적석(積石)이나 부석(敷石)의 방식으로 정연한 묘역시설을 축조한 형태인데, ‘적석부가(積石附加) 지석묘’ 또는 ‘구획묘(區劃墓)’로 불리기도 한다. 북한강, 금강 상류, 남강과 낙동강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며, 섬진강과 영산강 유역의 일부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위치 및 현황]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로 초입 우측에 북동-남서 방향의 긴 시멘트 옹벽이 있다. 옹벽앞 도로와 하양방향 지방도 제919호 사이에 있는 길쭉한 공터 하부에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경산 대학리·교리 유적은 발굴조사가 완료된 2017년 보존이 결정되어 복토가 이루어졌으며, 유적의 현황이 간략하게 기술된 안내판이 세워졌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조사지역은 2012년 세종문화재연구원의 지표조사, 2016년 세종문화재연구원의 시굴조사를 거쳐 동북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5차 발굴조사 결과 구상유구 1기·수혈유구 1기·묘역식 지석묘 6기 등 총 8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이 중 묘역식 지석묘 6기는 해발 56~57m 선상에 북동-남서방향으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6기의 묘역식 지석묘는 모두 지방도 제919호[하양 방향 1·2차선] 아래로 연결되는 상황이며 1호를 기준으로 남서방향으로 2~6호가 위치한다.

유적 내 가장 규모가 큰 1호는 길이 34.8m, 넓이 3.1m[북동쪽]~7.6m[남서쪽]이며, 평면 형태는 유구의 일부만 확인되어 단정할 수 없지만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묘역의 축대부는 23~55㎝ 정도의 크기로 가공된 할석을 가로눕혀쌓기와 부분적으로 세로세워쌓기를 혼용하여 쌓았는데, 2~5단 정도 잔존하고 있다. 축대 연접 시설부는 남동쪽 축대 외면에서 확인되며, 길이 30~60㎝ 정도의 판석재 할석을 축대에 최대한 밀착시킨 상태이다. 매장 주체부는 묘역의 남동쪽에 치우쳐 위치하며 벽석 2단 정도만 유존하고 있다. 묘광의 잔존 규모는 길이 513, 너비 281㎝이며, 주죽방향은 남동-북서이다. 석관은 길이 138㎝, 너비 68㎝ 정도이며, 바닥면에는 길이 10~110㎝, 두께 6~8㎝의 얇은 판석제 할석 5매를 설치한 뒤 그 위에 길이 20~50㎝의 가공된 할석을 사용하여 벽석을 쌓았다.

조성 시기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단정할 수 없지만 동쪽에 인접한 4차 6구역 석관묘(石棺墓)에서 원형점토대토기(圓形粘土帶土器)와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가 출토되었고, 층위상의 선후관계로 보아 지석묘는 석관묘 이후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1호 목탄시료의 AMS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B.C.900~B.C.4~3세기 사이인 청동기 시대~초기 철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경산지식산업지구 내 묘역식 지석묘는 후대의 삭평 및 교란으로 인한 훼손이 심하고, 지방도 제919호 아래로 유구가 연결되고 있어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경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매장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향후 청동기 시대 경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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