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40
한자 永田里
영어공식명칭 Yeongj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 개설
영전리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013㎢
가구수 227가구
인구[남/여] 438명[남자 206명|여자 232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오래전 마을에 살았던 덕망가가 외롭고 괴로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 덕망을 사모하여 마을 이름을 전옹(田翁)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3년 영숙이라는 사람이 자기 호의 영(永) 자와 밭이 많다고 하여 전(田) 자를 더하여 영전(永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호리(西湖里), 활구미리(活口未里), 안평리(安平里)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영전마을, 서호마을, 남전마을, 남성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영전마을은 수원황씨가 600여 년 전에 터를 잡음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서호마을은 300년 전쯤 김해김씨가 자리잡으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해남윤씨 윤세경(尹世京)이 경기도에서 휴양 차 내려왔다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남전마을은 중국과 제주를 오가는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였다는 설이 있으나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옛 마을 지명인 양하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성마을은 조선 말 고기가 많이 잡혀 해안에 3~4호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영전마을 가운데로영전천이 흐르고, 뒤로는 윤도산[280m]이 솟아 있다. 마을 앞으로는 김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서호마을 뒤로는 달마산(達磨山)[470m]이 있으며,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황]

영전리(永田里)는 북쪽으로 평암리, 서홍리, 동쪽으로 바다, 남쪽으로 바다, 서쪽으로 송지면 통호리, 송지면 송호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9.013㎢이며, 영전리, 서호리, 남전리, 남성리의 4개 행정리에 227가구, 438명[남자 206명, 여자 23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영전마을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작물은 마늘, 배추, 양파 등이다. 남성마을 주민 대부분은 전복 양식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남전마을의 주 생업은 농업과 어업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밭농사는 주로 마늘을 재배하고 있다. 어업으로는 굴과 김, 전복 양식을 하고 있다. 국도 제77호선이 해안선을 따라 지니며, 도로를 가운데 두고 산과 바다에 접하여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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