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23
한자 草松里
영어공식명칭 Chos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초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초송리 개설
초송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초송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6.916㎢
가구수 376가구
인구[남/여] 722명[남자 353명|여자 369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초두(草頭)의 첫 번째 글자와 외송(外松)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초송리(草松里)라 지었다.

외송(外松)마을은 초송리에서 으뜸[설, 솔]인 소리마을의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밖소리’라 불렀다. 이를 밖에 해당하는 외(外) 자와 설 혹은 솔에 해당하는 송(松) 자를 써서 ‘외송(外松)’이라 하였다. 초두(草頭)마을은 ‘풀머리’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초두(草頭)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초두리, 두목리, 외송리와 송천리·예정리·내송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초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외송(外松)마을, 두목(斗目)마을, 내송(內松)마을, 비석(碑石)마을, 초두(草頭)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외송마을과 내송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나오는 마을이다. 외송마을은 1600년경 김해김씨가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그 후 무안박씨, 다음으로 장흥임씨가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두목마을은 1943년경 간척지가 개발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내송마을은 1600년 말경에 하동정씨가 들어왔다고만 전한다. 비석마을은 마을 구릉 정상부에 지석묘군이 있어 마을 형성이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 입향 성씨는 김해김씨라고만 전해 온다. 초두마을은 1600년경 원주원씨 원만구(元萬龜)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서남쪽과 동북쪽에 있는 금호호와 영암호를 사이에 두고 문내면과 영암군 미암면이 마주 보인다. 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갯벌이 간척되어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초송리는 구릉지대에 형성된 마을로, 외송마을 앞으로 자그마한 옥달산이 있다.

[현황]

초송리(草松里)는 북쪽으로 영암호, 동쪽으로 송천리, 남쪽으로 예정리, 금호호, 서쪽으로 진산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6.916㎢이며, 외송리, 내송리, 두목리, 비석리, 초두리의 5개 행정리에 376가구, 722명[남자 353명, 여자 36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작물은 대부분 감자, 고구마, 배추, 양파를 재배하고, 일부 농가에서는 딸기, 무화과, 참다래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외송제와 영암호·금호호 물을 이용하고 있다.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이라서 도로변에 산이면사무소, 산이면보건지소, 산이119지역대, 산이초등학교, 산이중학교 등의 주요 기관과 각종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초송리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지방도 제806호선이 지나고 있다. 주요 문화유적으로 산이중학교 북동쪽 500m에 4기의 비석 지석묘군이 있고, 내송마을에는 24기의 청자가마터가 조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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