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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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笠巖浦 |
영어공식명칭 | Ibampo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남주 |
비정 지역 | 입암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부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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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포구|고지명 |
관련 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新增)』|『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여지도서(輿地圖書)』|『해남읍지(海南邑誌)』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입암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포구.
[개설]
조선시대 입암포(笠巖浦)는 제주도를 왕래하는 배들이 물때를 기다리거나 항해 중 바람을 피하는 정박처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성산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입암포의 서쪽 포구는 광물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운반하는 선적항이 되었다.
[명칭 유래]
입암포의 지명은 해변의 삿갓바위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었다.
[형성 및 변천]
제주도를 왕래하는 배들이 물 때를 기다리거나 항해 중 바람을 피하는 정박처로 이용되었다. 입암포 인근은 거센 물결의 울돌목을 지나려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기다리는 장소이다. 정박했던 배들은 출항 전 항해의 안전을 위하여 입암포에서 뱃고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성산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입암포는 그 광물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운반하는 선적항이 되었다. 현재에도 입암포는 성산광산의 항구로 이용되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904번지의 해안이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新增)』,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해남읍지(海南邑誌)』에 “현 남쪽 50리[약 19.64㎞]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현 황산면 부곡리의 선창으로 진도 벽파진과는 서쪽에 마주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해남읍지』[1872]에 의하면 “제주에 내왕하는 배가 정박한다.”라고 하였다. 『해남읍지』[1872]에서는 입암의 지명 유래를 알 수 있다. “바다에서 보면 입석이 높이 솟아 있는데 높이가 10여 장이 된다.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흰옷에 흰갓을 쓰고 있는 것과 같다. 벽파진 아래에 있으며 큰 바닷가이다[笠巖浦 濟州船泊處 立石屹立如巨人狀 高十餘丈 望若白衣白苙之形 在碧波津下 大海之邊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