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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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芚寺事蹟碑 |
영어공식명칭 | Daedunsa Sajeokbi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8-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호균 |
건립 시기/일시 | 1744년(영조 20) - 대흥사 사적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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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둔사 사적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8-6] |
성격 | 기념비 |
양식 | 석비 |
재질 | 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335㎝[높이]|126.5㎝[너비]|43㎝[두께] |
소유자 | 대흥사 |
관리자 | 대흥사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는 비.
[개설]
대둔사 사적비(大芚寺事蹟碑)는 1744년(영조 20) 건립되었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다.
[건립 경위]
대둔사 사적비는 대흥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비로 1744년(영조 20)에 건립되었다. 대둔사 사적비는 사찰 입구 승탑원에 승탑이나 승려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대둔사(大芚寺)는 대흥사(大興寺)의 옛 이름이다.
[위치]
대흥사는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12㎞ 거리의 장춘동(長春洞)에 있다. 우리 국토 최남단 두륜산(頭輪山)[700m]의 여덟 봉우리인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도솔봉[대둔산],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넓은 산간 분지이다. 절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들을 배치하였다. 대둔사 사적비는 승탑원 왼쪽 여러 개의 비석 가운데 가장 우뚝하다.
[형태]
대둔사 사적비는 비석 높이 335㎝, 너비 126.5㎝, 두께 43㎝이다. 대좌 성격의 거북이 위에 비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귀부를 갖췄으나 귀갑문(龜甲文)이 희미하다. 곧추선 용머리에는 여의주를 물었다. 네 발은 땅에 박고 정지된 상태이다. 귀부 윗면의 비좌 위에 비 몸돌을 꽂고 팔작지붕 모양의 머릿돌을 얹었다. 비 몸돌에는 대흥사[대둔사]의 연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경은 가로 2.5~3㎝, 세로 3㎝이다. 음기에는 대시주질(大施主秩)과 산중노덕(山中老德), 연화질(緣化秩)을 기록하였다.
[금석문]
대둔사 사적비는 거북 받침돌[龜趺]과 비 몸돌[碑身], 비의 머릿돌[螭首]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형태를 모두 갖추었다. 비 앞면 맨 윗부분에 전제(篆題)인 ‘대둔사사적비명(大芚寺事蹟碑銘)’을 가로로 썼다. 비 앞면 오른쪽 맨 앞에 ‘유명조선국전라도해남현두륜산대둔사사적비병서(有明朝鮮國全羅道海南縣頭輪山大芚寺事蹟碑幷序)’라는 비제(碑題)를 세로쓰기 하였다. 비문은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짓고 아울러 전액을 썼다. 비문의 글씨는 해서(楷書)체로 “임금께서 즉위한 3년 정미년[1727(영조 3)] 7월 일 계해년[1743(영조 19)] 가을에 시작하여 갑자년[1744(영조 20)] 9월에 세운다.”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대둔사 사적비는 비지정 문화재이다. 승탑원 전체에 담장을 둘렀고 출입문인 진화문(眞化門)은 열쇠가 잠겨져 있다. 관리 주체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이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