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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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基烈 |
영어공식명칭 | Lim Giy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02월 11일 - 임기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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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0년대 - 임기열 광복군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2011년 01월 22일 - 임기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임기열 대통령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임기열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 |
활동지 | 중국 후난성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4-328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광복군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복군 단원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기열(林基烈)[1924~2011]은 1924년 2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 강제 징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탈영한 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항일 활동을 수행하였다.
[활동 사항]
1944년 말을 전후하여 중국 각 전선의 일본군에 배치된 한국인들 중 100여 명의 애국 청년들이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하였다. 현지 중국군 지휘관들은 재량에 따라 한국인 사병을 대적 공작 임무에 투입하였고, 이들의 정확한 정보 제공 및 인도로 다수의 일본군 소부대를 섬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광복군 소속 이병곤(李炳坤)은 이들을 후방 지역에 집결시켜 교육을 실시하게 할 것과, 제9전구를 단위로 한 광복군 편성에 협조하여 줄 것을 제9전구 사령관 설악(薛岳) 장군에게 요청하여 승낙을 받았다. 제9전구 사령부는 먼저 탈출해 온 100여 명과 앞으로 탈출하여 올 한국인 장병 전원을 사령부 소재지인 계동(桂東)과 전방 지휘소 소재지인 강서성(江西省) 의춘(宜春)에 각각 집결시키도록 전 예하 부대에 지시를 내렸다. 또한 광복군 편성 절차에 대하여 군사위원회에 주선하여 줄 것을 약속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임기열은 중국 광동성(廣東省) 낙창현(樂昌縣)에서 일본군을 탈출한 후 중국군 제4군 101사단 첩보대에서 항일 활동을 하였다. 그 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되어 공작조로 항일 활동을 전개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임기열은 2011년 1월 22일 사망하였다.
[묘소]
임기열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4-328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기열의 공적을 기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