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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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寺銅鐘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sa Bronze Bell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선 |
대흥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전하는 탑산사명 동종 등 6구의 동종.
[개설]
해남 대흥사(大興寺)에는 총 6점의 동종(銅鐘)이 전해진다. 제작 시기는 고려 후기에 주조된 것이 1점, 나머지 5점은 조선 후기의 종이다. 형태는 모두 한국 종 전통 양식을 따랐고, 탑산사명 동종(塔山寺銘銅鐘)[보물 제88호]을 제외하고는 부분적으로 범자와 보살상의 등장에서 중국 혼합형 양식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흥사 침계루에 있는 건륭삼십칠년명 동종(乾隆三十七年銘銅鐘)은 종의 개수(改修) 사실을 적고 있어 종의 개수 현황을 알 수 있다.
[탑산사명 동종]
탑산사명 동종은 원래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의 탑산사에 있었으나 1923년 화재로 절이 불타자 대흥사로 옮겨 왔다. 종의 몸체에는 주조 당시의 명문 ‘계사시월일 탑산사화향도(癸巳四月日塔山寺火香徒)’와 추가된 명문 ‘만력이십년기해십이월일(萬曆二十年己亥十二月日)’이 새겨져 있다. 명문만으로는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계사라는 간지명과 명문을 근거로 1233년(고종 20) 주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에는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어깨 부분에에는 연판무늬를 촘촘히 세워 입체적으로 표현한 입화식(立花飾)이 장식되어 있다. 상대와 하대 아래에는 연주무늬를 돌리고, 안에 당초무늬를 장식하였다. 상대 밑에 4개의 유곽을 설치하고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 사이의 몸체 중간 부분에는 4구의 좌상의 보살상이 구름 위에 앉아 있다. 당좌는 유곽 밑으로 구연부 가까이에 원형의 연주무늬대 안에 8엽 중판의 연화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 조각의 생동감과 문양 장식의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동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흥사 침계루 건륭삼십칠년명 동종]
대흥사 침계루에 있는 건륭삼십칠년명 동종은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상대에는 범자 2자를 사다리꼴 안에 38판 배치하였다. 상대에서 조금 떨어진 부분에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 4구를 입상으로 배치하였다. 당좌는 없으며, 중앙에 2조의 융기선을 돌렸으며, 하대는 꽃과 줄기의 덩굴무늬를 치장하였다. 종의 주조와 관련된 명문이 융기선과 하대 사이에 ‘만력십오년신조 강희오십육년정해삼월일개조 건륭삼십칠□□진십월일개조(萬曆十五年新造 康熙五十六年丁亥三月日改造 乾隆三十七□□辰十月日改造)’라고 새겨져 있는데 분석하면 건륭삼십칠년명동종은 만력(萬曆) 15년인 1587년 조성된 종을 강희(康熙) 56년 개조하고, 다시 건륭(乾隆) 37년인 1772년 재개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기는 조선 후기이나 종의 형식이 조선 중기를 따르고 있어, 건륭삼십칠년명 동종은 원래 처음 주조 당시의 종을 모본으로 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사 성보박물관 내 강희사십팔년 진불암명 동종]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강희사십팔년 진불암명 동종(康熙四十八年眞佛菴銘銅鐘)은 청신암에서 옮겨졌다고 한다.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가지고 있고, 천판과 접하는 곳에 단판연판(單瓣蓮瓣)의 입상대를 돌리고, 상대 대신에 연주무늬를 돌렸다. 연주무늬 아래 원형의 범자무늬가 4개 배치되고 아래 다른 종에 비해 작게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입상의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하대는 상하 2단으로 구분하고 당초무늬를 새겼다. 유곽과 하대 사이에 ‘강희사십팔년기축사월일진불암대종 주공윤종백양주(康熙四十八年己丑四月日眞佛菴大鐘 鑄工尹宗佰兩主)’이라고 새겨져 있어 1709년 진불암의 대종으로 윤종백이 주조한 종임을 알 수 있다.
[대흥사 대웅보전 내 강희사십이년 청룡산 보적사명 동종]
대흥사 대웅보전 내에 있는 강희사십이년 청룡산 보적사명 동종(康熙四十二年靑龍山寶積寺銘銅鐘)은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가지고 있고, 천판(天板) 외연을 돌아가며 불규칙적으로 낮게 돌기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가 표현되었으며, 아래에 붙은 상대(上帶)에는 방형 구획으로 나눈 구획마다 도식적인 형태의 당초무늬를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에는 원형의 범자무늬를 4개 배치하였고, 아래쪽에 공간을 약간 두고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정면을 보고 합장하고 있는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하대는 상하 2단으로 구분하고, 연당초무늬를 새겼다. 유곽과 하대 사이에 ‘강희사십이년청룡산보적사(康熙四十二年靑龍山寶積寺)’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703년 청룡산 보적사의 종으로 주조된 종임을 알 수 있다.
[대흥사 천불전 내 강희사십팔년 승달산 법천사명 동종]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있었던 강희사십팔년 승달산 법천사명 동종(康熙四十八年僧達山法泉寺銘銅鐘)은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가지고 있고, 천판과 접하는 곳에 단판연판(單瓣蓮瓣)의 입상대를 돌리고, 상대 대신에 연주무늬를 돌렸다. 연주무늬 아래 원형의 범자무늬가 4개 배치되고 아래 다른 종에 비해 작게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입상의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종 크기에 맞게 커지면서 종에 비해 작은 유곽대는 더욱 왜소해 보인다. 하대는 상하 2단으로 구분하고 당초무늬를 새겼다. 유곽과 하대 사이에 ‘승달산법천사대종 강희사십팔년 편수질윤종백서필성김원학(僧達山法泉寺大鐘康熙四十八年片手秩尹尙伯徐必成金元鶴)’이라고 새겨져 있어 1709년 무안군 승달산 법천사의 대종으로 윤상백, 서필성, 김원학이 주조한 종임을 알 수 있다. 대흥사로 옮겨진 정확한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대흥사 태극문 동종]
대흥사 태극문 동종(太極紋銅鐘)은 종신의 당좌가 태극무늬로 디자인된 독특한 종이다. 단용에 음통이 있는 용뉴에, 상대와 하대, 상대에 붙어 있는 연곽, 당좌와 비천 등이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배치되었다. 그러면서도 연곽은 4좌가 아닌 3좌가 있고 당좌는 연꽃무늬 대신 태극무늬로 표현하였다. 연곽이 3좌인 경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옹정 4년명 종에서 볼 수 있었으나 당좌가 태극무늬인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이다. 좌우로 나눈 태극무늬를 중심으로 사방에 팔괘무늬가 있는데, 현재의 태극기와 생김이 다르다. 처음 태극기가 도안화된 시기는 1882년이며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태극문 동종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주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천상 역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비천을 따라 조각하였으나 상호나 자세, 천의 자락, 구름이 둔탁하고 연꽃을 과장되게 처리되는 등 표현력이 떨어진다. 상대·연곽·하대는 구슬무늬를 위아래에 두고 사이에 포도무늬처럼 생긴 당초무늬로 장식하였으며, 하대는 당좌와 비천이 있는 부분에 둥근 꽃모양을 두어 강조하였다. 태극문 동종은 대흥사 외에도 일본 가가와현[香川縣] 오카와군[大川郡]의 야마다[山田]가 소장하고 있다. 태극문 동종들은 크기와 문양이 동일해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