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054 |
---|---|
한자 | 音樂 |
영어공식명칭 | Music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윤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
[개설]
전라남도 해남군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우수영부녀농요, 육자배기 등 유서 깊은 음악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국악 분야에서 뛰어난 판소리 고수(鼓手)와 명창을 많이 배출하였다.
[전통음악]
해남은 기후가 온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전형적인 농업 고을이었던 까닭에, 수많은 들노래와 강강술래 등이 전하고 있다. 특히 문내면 우수영 일대는 조선시대에 삼도수군통제사가 주둔하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1,000호가 넘는 주민이 밀집하여 거주하였다. 그래서 우수영 지역에는 여러 종류의 노동요와 집단 음악의 전통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강강술래와 우수영부녀농요는 독특한 전통 민속음악으로 오늘날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강강술래는 1965년에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고, 1976년 제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수영부녀농요는 1972년도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음으로써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받게 되었다.
또한 해남은 남도잡가(南道雜歌)로 잘 알려진 육자배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 민요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가락으로 구성진 느낌을 자아내는 육자배기는 옛적에 해남의 농부들이 누구나 즐겨 부르던 들노래의 한 갈래이다. 이 밖에도 우수영 일대에는 정월대보름에 행하여 오던 민속 의식으로서 ‘전라우수영 용잽이놀이’가 전하여 오고, 현산면·송지면 등 과거에 병영(兵營)이 있던 해안 지역에서는 ‘군고(軍鼓)’ 가락이 해남 고유의 풍물 가락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처럼 해남은 여러 형태의 부녀농요를 일상적인 노동요로 전승하고 있으며 육자배기 등의 전통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환경은 수많은 소리꾼과 뛰어난 고수가 배출되는 배경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기에 한때 대흥사 주변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소리꾼과 고수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쑥대머리」의 대가이자 명창인 임방울을 비롯하여 동편제의 대가 박봉술, 신고(神鼓)로 알려진 고수 김명환 등이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관을 거쳐갔다고 전한다. 그런 소리꾼과 고수들의 영향으로 해남은 서편제의 본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후 많은 명창과 고수가 배출된다. 해남의 소리꾼으로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김흥봉(金興鳳), 천홍균 등을 꼽고 이후로는 소리와 창에서 공경환, 김달천, 한숙구, 김춘학 등이 돋보였고 고수는 한흑석, 홍광표 등이 잘하였다. 이어 정철호를 비롯하여 천대용, 감남종, 추정남 등이 판소리고법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해남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판소리고법 분야에서 거두어 고수의 고장으로 우뚝 발돋움하게 된다.
2018년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 보유자 가운데 전국에서 딱 두 명뿐인 판소리고법 부문의 정철호를 비롯하여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감남종,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추정남 등이 모두 해남 출신이다. 몇 명 되지 않는 판소리고법 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들 가운데 세 명이 해남 출신인 것이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판소리 고수 대부분이 이들 해남 출신 보유자들의 제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추정남은 해남에서 전수관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판소리고법의 두드러진 성과에 가려진 면도 있지만, 해남은 쟁쟁한 명창도 많이 배출하였다. 해남 출신 명창으로는 1992년 ‘정읍사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박금희[본명 박방금]와, 같은 해에 ‘남원춘향제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이난초가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또 2000년 목포에서 열린 제12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천명희[천희심으로 개명]는 해남 출신 명고수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였던 고(故) 천대용의 딸이고, 박금희의 제자인 채옥란과 이병채 등도 해남에서 이름난 소리꾼이다.
[현대음악]
해남에 서양음악이 전래된 것은 해남보통학교[1911년 9월 개교, 지금의 해남동초등학교]가 개설된 무렵으로 추정된다. 해남 출신으로 서양음악 정규교육을 최초로 받은 사람은, 일본 도쿄음악학교 바이올린과를 졸업한 박노수(朴魯洙)이다. 「사랑의 슬픔」을 작곡한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1875~1962]에게 사사받았으며,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고 전한다.
박노수의 뒤를 이은 해남의 음악가는 유신(劉信)[1918~1994]이다. 유신의 본명은 유신종(劉信鍾)이며, 일제강점기에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해방 후 부산에서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 부산 한성여자대학교 음악과 교수를 역임하고,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교, 중앙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작곡가, 음악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서양음악 형식에 한국적 전통과 정서를 담아 한국 음악의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부산직할시 음악문화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문화예술상과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해남은 많은 음악 전공자를 배출하였으나 대부분 외지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지역 내에서의 음악 예술 활동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이후 한국음악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어 오페라와 교향악 등 다양한 초청 연주회를 개최하면서부터 서양 고전음악을 해남에서 접할 기회가 확장되었다. 또 1991년에 결성된 해남어머니합창단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벌이면서 해남의 음악은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된다. 게다가 1995년에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해남지부가 인준을 받으면서 대중음악 활동도 한층 체계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